환자 두 번 울리는 제약회사의 역지불 합의

환자 두 번 울리는 제약회사의 역지불 합의

입력
2022.11.07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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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13일 환자의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을 높이는 복제약의 생산·출시를 중지 또는 지연시키기 위한 역지불 합의에 가담한 다국적 회사들에 대하여 과징금 26억5,000만 원을 부과하였다.

역지불 합의(reverse-payment agreement)란 오리지널 약품 특허권자가 복제약 제약사에게 현금 지급, 독점 판매권 부여 등 고액 합의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복제약의 시장출시를 중지 또는 지연하는 계약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실시권자가 특허권자에게 실시 대가를 지급하는 데 반하여 역지불 합의는 특허권자인 오리지널 제약사가 실시권자인 복제약 제약사에 대가를 지급하는 구조다. 복제약의 시장 출시 지연을 조건으로 대가를 지급한다는 의미에서 '시장출시 지연 합의(Pay for Delay Agreement)'라고도 한다.

이번에 적발된 역지불 합의 구조는 이렇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알보젠이 전립선암·유방암 등의 처방으로 쓰이는 자사의 오리지널 약(졸라덱스)의 복제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복제약을 생산·출시하지 않는 조건으로 졸라덱스 등 3개 오리지널 약의 국내 독점 유통권을 주기로 알보젠과 합의하였다. 공정위는 2011년에도 동아제약과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역지불 합의에 대하여 과징금을 부과한 적이 있다. 이 건도 아스트라제네카와 알보젠의 역지불 합의 구조와 사실상 같다. GSK가 자신의 오리지널 항구토제 조프란의 대체 복제약인 온다론의 시장 철수 및 경쟁 약 개발·생산·판매 중지 조건으로 조프란의 국공립병원에 대한 독점 판매권과 인센티브를 주기로 동아제약과 합의하였던 사건이다.

위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역지불 합의는 출시 예정인 복제약의 시장 출시를 막거나 이미 판매되고 있는 복제약의 판매를 중단하게 하는 뻔뻔스럽고 가증스러운 담합이다.

미국은 1984년 자국 국민과 정부의 지출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약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오리지널약과 복제약 간 경쟁 활성화가 주요 내용인 해치-왁스만법(Hatch-Waxman Act)을 제정하였다. 2013년에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고액의 대가를 지불하고 복제약 출시를 중지 또는 지연시키는 악타비스타(Actavista)의 역지불 합의에 대하여 위법으로 판시하였다.

역지불 합의가 없었다면 오리지널약과 경쟁하는 복제약이 출시되어 약품 가격은 훨씬 더 저렴해진다. 보건복지부 고시인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에 따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의약품의 경우 복제약의 최초 출시로 오리지널 약가는 기존 약가의 70%로 복제 약가는 오리지널 약가의 59.5%로 책정되고, 세 번째 복제약이 출시되면 오리지널과 복제 약가는 함께 기존 오리지널 약가의 53.55%로 책정된다. 이처럼 복제약의 출시는 오리지널 약과의 경쟁을 통해 시장 전반의 약가 하락으로 이어져 환자의 의료비와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게 된다. 이를 막는 역지불 합의는 약품 가격을 높이고 건강보험료를 올려 복용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결과적으로 역지불 합의는 환자를 두 번 울리면서 가담한 제약사의 배만 불린다. 역지불 합의가 시장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공정위를 비롯한 관련 부처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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