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와 트라우마… "자극적 영상과 거리두기 필요"

재해와 트라우마… "자극적 영상과 거리두기 필요"

입력
2022.11.05 04:40
13면

<75>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돌이켜보다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발생 당시 필자가 찍은 화재 현장.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발생 당시 필자가 찍은 화재 현장.


세월호 참사로부터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탄 배가 바닷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던 처참한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또 일어났다. 서울 번화가인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고통스럽고 비현실적이다.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는 말인가? 젊은이들을 저 세상으로 밀어낸 우리 사회의 무기력하고 잔인한 민낯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 동일본대지진과 트라우마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 생활할 때 늘 트라우마와 싸우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규모 지진에는 익숙했는데도 불구하고, 도쿄에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뒤 몇 년 동안은 작은 흔들림이나 갑작스러운 소음에도 극도로 예민해져서 고생을 했다. 하물며 도로나 건물이 파괴될 정도의 큰 지진과 그 이후의 혼란스러움을 경험한 사람은 어떻겠는가? 실제로 대지진 이후에 자주 공포가 엄습하고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일본인을 적지 않게 보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도쿄에 거주했던 20대의 미디어 이용 행태에 대한 인터뷰 조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열도 동쪽 앞바다에서 일어난 해저 지진이었다. 동부 지방에서는 ‘진도 9’를 기록한 거대 지진이었지만, 진원에서 수백㎞ 떨어진 도쿄에서 관측된 흔들림은 ‘진도 5약’ 정도였다. 사실 대도시에서는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는 규모지만, 평소에 지진 대비가 철저했기 때문에 피해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큰 흔들림만으로 도로와 건물 일부가 파괴되는 등 도쿄에서도 혼란한 상황이 꽤 오래 계속되었다. 지진이 잠잠해진 뒤에도 지진해일로 인한 대규모 화재,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 사고 등이 잇달아 발생했으므로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기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한편,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전기나 통신망, 인터넷, 방송 등 미디어 인프라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만큼, 재해나 재난 상황에서 미디어가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는지를 조사하기에는 적합한 상황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젊은이들은 대체로 소셜 미디어가 지진 직후의 상황을 견디고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가짜뉴스가 유포되기도 했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재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보원의 신뢰성을 따지고 개별 정보를 취사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또, 전화 회선이 혼잡해서 통화가 어려울 때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친구와 지인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답변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설계할 때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답변도 있었다. 응답자들이 TV 모니터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지진과 지진해일의 피해 영상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고통스러웠다고 입을 모은 것이다. 심지어 답변자의 절반 정도가 TV를 많이 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지진 이후 TV와 소셜 미디어를 일체 끊었다는 다소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던 순간 자취방에 혼자 있었다는 대학생은 모든 공중파 채널이 오로지 지진과 원전에 관련한 뉴스만을 쏟아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재난 정보를 멀리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 계정을 삭제하고, TV로는 오직 만화 전문 채널만 시청했다.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재해가 수습될 때까지 그가 절망과 공포를 잊을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온라인 게임뿐이었다.

재난이나 재해 상황에서 공적인 정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행동은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의미에서는 적절치 않다. 다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물리적 피해가 발생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심리적, 정신적으로 과도한 상처를 입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동일본대지진 직후 몇 주 동안 지진해일로 건물이 파괴되고, 마을 전체가 화재로 불타는 끔찍한 보도 영상을 보는 것이 진심으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는 장면을 TV로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재해, 재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줄곧 TV를 켜 놓기는 했지만 화면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재난 장면 때문에 우울하고 절망적이었다. 그때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지금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망정이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동영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더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 계속되는 인재(人災)는 우리 사회의 집합적인 트라우마

재해나 재난의 직접 피해자가 아니어도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례는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인터넷은 정보 수요가 급증하는 재해나 재난 상황에서 실시간 정보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게시판 등에서 현장에서 바로 촬영된 사진이나 동영상이 앞다투어 전파되곤 한다. 디지털 정보 환경이 정착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생생하게 재해나 재난 현장을 유사 경험하게 된 것이다. 지난 주말 핼러윈 이태원 참사 직후에도 TV와 소셜미디어 등에서 현장의 비참한 광경을 담은 동영상이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채 그런 동영상들을 시청한 뒤 지금까지도 엄청난 공포와 위화감과 싸우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보도의 현장감을 강화한다는 긍정적인 역할보다, 보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작용이 더 크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진 등 자연 재해에 시달리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터지는 대형 인재(人災)가 집합적 트라우마의 근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배에 타는 것이 무섭고 가슴이 아파서 고통스럽다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다. 수백 명이 희생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이후에 지하철에 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에 시달린다는 사람도 보았다. 핼러윈 이태원 참사는 또 얼마나 많은 이의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남길 것인가?

핼러윈 이태원 참사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참사 당일 보았던 가슴 아픈 동영상을 절대로 다시 찾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는데도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부에 분노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감할 줄 모르는 오만한 권력에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재해나 재난 현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멀리하는 것이 개인이 트라우마를 예방하거나 완화하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집합적 트라우마는 오로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하고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자연 재해와는 달리, 누군가의 무책임 혹은 실책에 의해 발생한 인공적인 재난이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사고가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철저하게 밝히고 대책을 실천하지 않는 한, 사회가 함께 짊어진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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