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컬러강판 시대 열고 떠납시다" 12년 찰떡궁합 두 명인의 새로운 도전

입력
2022.11.09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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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 부산공장
①컬러강판 생산 '외길 30년' 이상환 기성
②자타공인 '연구소 브레인 최우찬 수석

최우찬(왼쪽) 동국제강 수석연구원과 이상환 기성이 지난달 31일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부산=김형준 기자

최우찬(왼쪽) 동국제강 수석연구원과 이상환 기성이 지난달 31일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부산=김형준 기자


1993년 동국제강(당시 연합철강) 부산공장. 스물 둘 청년은 입사 후 부여 받은 컬러강판 생산 업무에 눈이 번뜩였다. 안정적이고 월급 많은 곳으로 알고 들어온 회사에서 새로운 색, 새로운 질감, 새로운 기술을 입힌 철판을 만드는 일은 퍽 매력적이었다. 청년은 어느덧 51세 중년이 됐고, 회사에서는 생산직 중 단 4명에게만 주는 최고직급 '기성' 타이틀을 줬다. 동국제강 내 '컬러강판 명인'으로 불리는 이상환(51) 기성 얘기다.

지난달 31일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만난 이 기성은 컬러풀(colorful)하고, 원더풀(wonderful)한 30년 외길 인생 비결을 묻자 "연구소에서 끊임없이 제공해 준 번뜩이는 아이디어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컬러강판 생산라인은 제철소 업무 가운데서도 무엇인가를 꾸준히 창조하는 시간이 거듭돼 온 영역"이라고 했다.

강산이 세 번은 바뀔 시간 동안 이 기성이 몸담은 동국제강 컬러강판 부문 경쟁력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냉장고나 LG전자 오브제컬렉션 세탁기 등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고급 가전은 물론 엘리베이터, 방화문 등 건축 자재로도 널리 쓰인다. 스타벅스 매장과 서울 고척돔, 이케아 등 색채와 질감에 포인트를 준 건물 자재도 바로 여기서 만든 컬러강판이다.



동국제강 컬러강판 PW17G 제품이 외관에 적용된 스타벅스 대전갈마 DT점. 동국제강 제공

동국제강 컬러강판 PW17G 제품이 외관에 적용된 스타벅스 대전갈마 DT점. 동국제강 제공


글로벌 철강사들이 지금까지도 상용화에 애를 먹는 'UVCM 컬러강판'을 자체 개발한 2015년이 터닝포인트였다. 특수 코팅기술로 품질은 높이고 생산성도 다섯 배 이상 늘려 중국산 저가 제품들의 도전을 거뜬히 막아냈다. 2019년 질감을 제대로 입힐 수 있는 고품질 '입체질감 컬러강판'도 이 회사 주력 상품이 됐다.

이 기성이 입사할 때 두 개뿐이던 컬러강판 생산 라인은 어느덧 9개(가전제품용 4개, 건자재용 5개)까지 늘어났다. 그는 "연구소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제품 시안을 꾸준히 개발해 오면 그때마다 '이걸 어쩌나' 싶다가도 제품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도전 의지가 커졌다"며 "글로벌 히트 상품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소-생산현장 '강철 호흡'으로 일군 세계 최고 기술

이상환(왼쪽) 기성과 최우찬 수석이 지난달 31일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손을 잡고 있다. 부산=김형준 기자

이상환(왼쪽) 기성과 최우찬 수석이 지난달 31일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손을 잡고 있다. 부산=김형준 기자


동국제강 내 '생산 명인' 이 기성이 극찬한 사내 중앙기술연구소에는 '개발 명인' 최우찬(48) 수석연구원이 있었다. 2011년 동국제강 입사 후에만 산업기술혁신에 앞장선 국내 업체와 연구소의 기술개발 담당자에게 수여하는 장영실상을 두 번 받고, 수상자 중 '왕중왕'에게 주는 대통령 표창까지 거머쥔 자타공인 철강업계 '브레인'이다. 도료 제조 회사에 다니던 그가 합류한 뒤 철강에 색상 등을 입히는 코팅 설비를 직접 만들어 컬러강판의 부가가치는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최 수석은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생산 라인에서 기막힌 솔루션을 제시해준다"며 "실수가 거의 없어 강판 손실도 적고, 납기일도 정확히 맞춘다는 점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치켜세운 최 수석(연구직)과 이 기성(생산직)의 팀워크는 고스란히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동국제강 컬러강판 판매량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45%에서 2020년 55%로 늘었고, 올해는 60%에 달할 전망이다.



'노 코팅, 노 베이킹'…친환경 철강에 꽂힌 주역들


동국제강의 컬러강판 '럭스틸' 제품. 동국제강 제공

동국제강의 컬러강판 '럭스틸' 제품. 동국제강 제공


이들의 눈은 이미 '저탄소·친환경 컬러강판'에 꽂혔다. 올해 내놓을 열두 가지 새 컬러강판 중 여덟 가지가 친환경 제품인데, 세계 최초로 개발한 용제(용해를 촉진하기 위해 섞는 물질) 없는 컬러강판, '럭스틸 BM유니글라스(Luxteel Biomass Uniglass)'는 차세대 주력 상품으로 꼽힌다.

두 사람의 목표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친환경'을 일구는 것이다. 최 수석은 "코팅과 건조·가열 과정이 없는 '노 코팅, 노 베이킹(No Coating, No Baking)' 생산이 궁극적 목표"라고 했다. 컬러강판은 보통 코팅과 오븐에서 가열·건조하는 과정을 세 차례 반복하는데, 이때 쓰는 액화천연가스(LNG) 대신 바이오매스 연료나 전기로 바꿔가겠다는 것이다. 최 수석은 "2026년까지 관련 파일럿(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2027년쯤 양산 설비 투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년을 약 10년 남긴 이 기성이 "남은 시간 동안 후배들에게 많은 노하우를 물려주고, 딱 그것(노 코팅, 노 베이킹)까지 구현하고 떠나면 될 것 같다"고 거들었다. 최 수석이 내민 목표를 최선을 다해 도와 실현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다. 이 얘기를 듣고는 "연구직은 정년을 채우는 사람도 거의 없다"며 크게 웃던 최 수석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조직(퍼스트 무버)이 되고, 무엇보다 꼭 저탄소·친환경 컬러강판 시대를 빨리 열겠다"고 다짐했다.

부산=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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