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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들의 전쟁놀이… 누구를 위해 총을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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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이 쏟아진다. 장교가 돌격을 독려한다. 병사들은 참호를 벗어나 적진을 향해 달려든다. 적에게 닿기 전 대부분이 쓰러진다. 시신 위에 시신이 쌓이고 전투는 일단락된다. 전사자들의 외투와 군화는 벗겨져 후방으로 옮겨진다. 세탁과 수선을 거쳐 신병들에게 새 것처럼 지급된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도입부는 전쟁의 실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한창이던 시기가 시간적 배경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참호전을 펼치며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한 채 소모전을 벌일 때다. 양쪽 모두 병사들이 쓰러지면 신병으로 채운다. 전선은 그대로인데 안타까운 청춘만 세상에서 지워진다.
후방은 전선의 사정을 잘 모른다. 독일 젊은이들은 전선으로 달려가고 싶어 하고, 몇몇 국가주의자들은 금방이라도 파리 함락이 가능할 것처럼 선동한다. 막 고교를 졸업한 파울(펠릭스 카메레르)과 그의 친구들은 피가 끓는다. 영웅이 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자원 입대한다. 하지만 전장은 상상과는 전혀 다르다.
파울은 전선에 투입되자마자 장교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다. “내일 아침 이전에는 죽어 있겠군.” 병약하고 이타적인 파울이 전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는 의미다. 예상대로 파울에게 지옥도가 펼쳐진다. 파울 또래 스물 문턱에 선 젊은이들이 매주 4만 명씩 죽어나간다. 파울은 “황제와 신과 조국을 위해” 군복을 입었으나 자기 목숨 지키기에 정신 없다.
영화는 전장의 참상과 더불어 지도부의 안락한 모습을 교차시킨다. 국가의 위신을 위해, 장성들의 명예를 위해 전쟁은 지속되나 브레이크는 없는 상황을 직설한다. 병사들은 국가를 위해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알고 보면 누군가의 욕망을 실현할 불쏘시개로 활용된다. 영화는 냉정하게 사실적으로 소모품 신세가 된 병사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제목에서 ‘서부 전선’은 독일 쪽에서 프랑스를 바라봤을 때를 감안한 수식이다. 영어 제목은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로 ‘서부 전선은 완전히 고요하다’라는 의미다. 매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나 전선은 움직이지 않으니 후방 지휘부는 전장에선 별일이 없는 걸로 치부하는 상황을 반영한 제목이다.
파울은 전우들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애틋한 전우애가 피어난다. 파울 일행은 해충 취급받는 전장에서도 최소한의 인류애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만으로 세상은 좋아질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인간의 어리석음은 반복된다. 평화를 코앞에 두고선 인간의 헛된 욕망은 잠들지 않는다. 무지렁이 같은 병사들만 소모품이 돼 사라질 뿐이다.
독일 소설가 에리히 레마르크(1898~1970)가 1929년 낸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소설은 1930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년이 지나고, 소설이 나온 지 100년 가까이 됐으나 인류는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영화가 품은 반전 메시지는 여전히 울림이 크다. 지난달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호평받았다. 내년 3월 열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독일 대표로 출품됐다. 독일 중견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가 연출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92%, 관객 90%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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