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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5억 떨어져도 집은 안 나가고... 집주인 '역전세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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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시의 대장주 '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 다음 달이면 입주 2년째인 이곳 집주인들은 요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밤잠을 설칠 정도다. 2년 전만 해도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 시행 여파로 전세 수요가 대거 몰릴 때라 수월하게 전셋값을 올려받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역전됐다.
올 상반기 이 아파트 전용면적 59㎡는 8억5,000만~9억 원에 전세가 나갔다. 최근엔 6억5,000만 원짜리 매물이 등장했다. 지난달 한 집주인은 2년 전 가격인 8억 원에 전세를 내놨다가 이틀 만에 1억 원을 내렸다. 전세 만기는 코앞인데,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자 역전세를 감수하고 전셋값을 확 낮춘 것이다. 인근 중개업소 대표는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이 모자라 대출을 받는 집주인도 꽤 된다"고 귀띔했다.
요즘 전세시장에선 신규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밑도는 역전세 아파트가 쏟아지고 있다. 새 아파트 입주가 몰린 지역에선 전세가 안 나가 잔금을 못 치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금리 급등·집값 하락 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전셋값이 갑작스레 급락한 여파다. 전세가 역전된 전세시장, 파장은 간단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의 전세지수(기준점 100)를 보면, 서울 아파트 전세지수는 2018년 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94~95선을 맴돌았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전세지수(89~91) 역시 거의 변동이 없었다. 이 지수는 임대차 2법이 시행된 2020년 7월 31일 이후 가파르게 뛰었다. 서울은 2020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9%(전국 14%) 넘게 급등했다. 이 기간 주요 아파트 전셋값은 속속 최고점을 찍었다.
올 상반기에도 전셋값의 수직 상승을 점치는 전망이 대세였다. '8월 전세대란'설도 나왔다.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집주인이 세입자의 계약 갱신을 고려해 한 번에 4년 치 보증금을 올려 받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이 소진되는 올해 8월부터 전셋값이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 것이다.
하지만 전셋값은 올 2월부터 내려가기 시작해 하반기 들어 하락폭이 더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10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67% 내렸고, 경기(-4.49%)와 인천(-6.66%)은 하락률이 더 컸다. 지방(-1.63%)은 대구(-8.4%)와 세종(-13%)이 가장 두드러졌다.
전망이 크게 어긋난 건 금리 영향이 절대적이다. 연초부터 시장금리가 뛰자 덩달아 전세대출 금리도 1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시중은행 4.9~7.3%)으로 치솟았다. 금리를 5%만 잡아도 2억 원 대출에 월 이자가 90만 원 수준이라 평범한 직장인은 전세시장 진입이 부담스럽다. 집값 하락에 따른 깡통전세 우려, 빌라를 중심으로 잇따른 전세사기 등 위험성마저 부각되자 전세 수요는 크게 쪼그라들었다.
반대로 물량은 넘쳐난다. 아실에 따르면, 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4만9,000여 건으로 연초보다 55% 급증했다. 경기(116%) 인천(119%) 등 6대 광역시는 같은 기간 28%(대전)에서 최고 560%(광주)까지 물량이 늘었다. 매매시장 침체로 안 팔린 집들이 전세시장에 가세한 데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올 1~10월 29만 가구·지난해 28만 가구)까지 쌓인 결과다.
전셋값 하락세는 더 가팔라지고 있다.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들이려고 전셋값을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어서다. 신규 전셋값이 2년 전 시세를 밑도는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임대차 2법 시행에 따라 전셋값을 크게 올려 받은 집주인은 '전셋값 급락 부메랑'을 맞고 있다.
부동산원 통계에 잡힌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59㎡의 전세 하한가는 13억 원 선. 1층 전세가 15억 원에 나간 8월이 불과 두 달 전인데 이제 9억 원대 전세가 잇따르고 있다. 임대사업자가 지난달 내놓은 9억9,000만 원을 시장은 '가격 파괴'라고 떠들었지만 최근엔 일반 집주인이 더 낮은 9억5,000만 원을 전세보증금으로 내걸었다. 2년 전 전세 실거래가(13억 원·2020년 9, 10월)에도 한참 못 미친다.
대단지가 밀집한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도 한 달 새 전셋값을 1억 원씩 낮춘 매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파크리오 전용 59㎡는 2년 전만 해도 전세 실거래 가격이 8억~9억 원에 달했고 지난해 말엔 10억5,000만 원에 세입자를 들였지만, 최근엔 7억 원대 매물이 넘쳐난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당장 전세금을 빼줘야 하는 집주인으로선 역전세가 나더라도 파격적으로 전셋값을 낮출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전세가 안 나가니 집주인은 피가 마르는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새 아파트 단지는 세입자를 못 구해 난리다. 이달 말 입주를 시작하는 인천 부평구 산곡동 799가구 규모의 부평두산위브더파크 아파트는 최근 전세 매물만 221건에 달한다. 분양가 5억600만 원인 전용 84㎡는 2억2,000만 원짜리 전세 매물도 등장했다. 국민평형 새 아파트 전셋값이 주변의 기존 주택 시세를 밑도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달 입주 기간이 끝난 부평신일해피트리더루츠 아파트는 10~20%가량이 입주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간 내 입주하지 못하면 잔금(30%)에 연 10% 수준의 연체이자가 붙는다. 최저가 전세 매물도 잇따르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대한 잔금 대출을 받지 않으려고 전세가 구해질 때까지 연체료를 내며 버티는 것"이라며 "이미 최저가인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게 불가능해 골머리를 앓는 집주인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푸르지오센트럴파크는 조만간 입주자 총회를 열어 입주 기간을 내년 1월 말까지 한 달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전세가 안 나가 잔금을 치르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입주민이 많아진 탓이다.
역전세는 계약 형태마저 바꾸고 있다. 기존 세입자가 계약 갱신 때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거나, 보증금 마련이 여의치 않은 집주인이 그에 해당하는 이자를 주고 전세 만기를 연장하는 거래가 늘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금은 집주인에게 내준 일종의 대출인 만큼 갱신 시점에 시세가 내려가 있다면 그만큼 돌려받는 건 당연하다.
서울 강서구의 한 집주인은 "만기를 앞둔 세입자가 보증금 1억5,000만 원을 돌려주거나 그에 해당하는 이자를 주면 계속 살겠다고 통보해 4% 이자를 쳐주는 걸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기존 전세가 안 빠져 세입자에게 연장해 줄 수 없느냐고 했다가 곧바로 전세금반환소송을 당했다거나, 급매로 전세를 놓고 부족한 돈은 대출로 충당했다는 식의 사연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줄을 잇는다.
한편에선 올 상반기 전세금을 더 얹어주고 계약을 갱신한 세입자들이 땅을 치고 있다. 직장인 김준원씨는 "5월에 3,000만 원을 더 올려주고 재계약을 했는데 이후 전셋값이 1억 원 넘게 떨어져 최근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다"고 토로했다.
전셋값 하락 추세에도 정작 세입자 부담은 더 늘었다. 전세대출 금리 급등으로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대안으로 택하는 월세의 비용마저 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0월까지 서울 아파트 월셋값은 4.8%(수도권 6.3%·KB 시세) 올랐다. 지난해 1월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 월셋값 상승률은 10%에 이른다.
전세시장은 내년까지 하방 압력을 받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미국발 금리 급등이라는 근원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지역이 역전세에 노출된 건 아니지만 임대차 2법 영향으로 4년 치 전세금을 올린 단지가 지금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위기를 넘길 수 있게 임대인 금융 지원 등 단기 처방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아직 크게 문제될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상승세를 멈추면 전세 수요가 자연히 되살아날 걸로 본다"며 "다만 임대차 2법 영향으로 전세 시세가 2중, 3중으로 형성된 점이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있는 만큼 조속히 개선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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