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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단교국 대만'에 누구를 대표로 보내야 할까[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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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2020년 1월 10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 중심가. 총통(우리의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마지막 유세가 한창이었습니다.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 여부가 최대 관심사인 터라 한국에서 선거 취재하듯 그의 동선을 따라다녔습니다.
차이 총통이 유권자들과 대면 접촉을 할 만한 곳에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방인을 향해 민진당 지지자 일부가 힐끗 쳐다보더군요. 경비가 삼엄할 줄 알았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차이 총통이 차에서 내리자 경호원들이 에워쌌습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까지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니까요.
확실히 중국과는 달랐습니다. 불과 7개월 전 베이징 도심에서 겪은 상황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당시 6ㆍ4 톈안먼사태 30주년을 앞두고 적잖은 특파원들이 광장 근처로 몰려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톈안먼광장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중국 공안이 길목마다 검문소를 두 개씩 설치했는데, 외신기자들은 일반 관광객이나 중국 거주 외국인들과 비자 유형이 달라 여권 검사에서 모조리 걸렸습니다.
공안은 “공문을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기자들은 “무슨 소리냐”고 언쟁하다 끝내 발길을 돌리며 먼발치에서 광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9년 유혈 참극이 벌어진 광장의 정치적 의미가 재차 부각되는 것을 꺼려 중국 당국이 출입을 막았던 겁니다.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관광지인 탁 트인 광장조차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게 중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이처럼 현장에서 체감한 대만과 중국은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대만은 우리와 여러모로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반면 한국에 대만은 사실상 잊힌 존재와 다름없어 보입니다.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막강한 중국의 위세에 눌려 각국이 공식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하나인 만큼 대만은 국가가 아닌 것이죠.
한국은 대만에 ‘대표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992년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하면서 기존 대사관의 지위가 격하됐습니다. 재외공관은 급에 따라 ‘대사관-(총)영사관-대표부-출장소’로 나뉩니다. 타이베이 대표부는 형식적으로 일본 오사카 총영사관보다 급이 낮은 셈입니다. 따라서 대만에 파견한 정부 대표는 ‘주대만 한국대사’가 아닌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라고 부릅니다. 대표부 명칭에 대만이라는 단어조차 쓸 수 없습니다. 세계 각국에 파견된 일반적인 대사와는 어감이나 역할이 달라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타이베이 대표부가 모처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에 누구를 수장으로 보낼지가 외교가의 관심사입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주밴쿠버 총영사를 지낸 정병원 대표를 대만에 보냈습니다. 아직 부임한 지 1년이 채 안됐지만 정부가 바뀌었으니 새 대표를 물색하는 모양입니다.
복병이 등장했습니다. 군에서 참모총장을 지낸 인사가 신임 타이베이 대표로 급부상한 겁니다. 이미 대통령실이 인사절차를 밟고 있어 조만간 발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모총장은 장관급 장교로, 의전서열에서 정부부처 차관보다 앞섭니다. 현재 주타이베이 한국 대표와 비교해 '급'이 훌쩍 높아진 겁니다.
과거에는 달랐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92년 단교하기까지 대만에 정식 대사를 보냈으니까요. 단교 이전 주대만 대사는 대부분 육해공군 참모총장(4성 장군)을 거친 예비역 대장의 몫이었습니다. △백선엽(4대)ㆍ김계원(7대) 대사는 육군참모총장 △최용석(5대)ㆍ김신(6대)ㆍ옥만호(8대) 대사는 공군참모총장 △김종곤(9대) 대사는 해군참모총장 출신입니다. 일제강점기 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했고 광복군 총참모장을 거친 이범석 대한민국 초대 총리도 2대 대사를 지냈습니다.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할 당시 마지막 대사는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4성 장군) 출신 박노영 대사입니다. 대만과의 군사적 교류를 기반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실제 예비역 4성 장군을 대표로 대만에 파견한다면 단교 이전으로 대만과 외교관계의 ‘격’을 높이는 셈입니다. 취임 후 줄곧 가치와 연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에도 들어맞아 보입니다. 대만은 미국이 제안한 4개국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4’(미국ㆍ한국ㆍ대만ㆍ일본)에 참가한 터라 앞으로 우리와 긴밀하게 공조할 대상입니다. 보기에 따라 3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대만과 관계 정상화의 첫발을 떼는 것으로 비칠 여지도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에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3연임에 성공하며 사실상 종신권력으로 군림한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을 외치면서 무력 침공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 왔습니다. 심지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최근 대만 통일에 대한 질문에 “한국은 제주도가 독립한다면 인정할 거냐”고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 대표의 급을 높일 경우 중국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합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미국 권력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방한했을 때 그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휴가 중이긴 했지만,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앞서 대만을 방문하고 온 만큼 중국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타이베이 대표부에 누구를 보내든 그건 윤 대통령 고유 권한입니다. 물론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커지는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십분 활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실과 정부가 대중관계와 국익을 고려해 세밀한 후속방안을 마련해 놓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타이베이 대표 인사는 자칫 한중관계에 불필요한 갈등만 고조시킬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참고로, 대만은 주한대표부 대표를 당초 대사급에서 올 7월 국장급으로 낮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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