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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를 덮을 수 있는 재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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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한국 스포츠계를 뒤흔들었던 이재영·다영 쌍둥이의 ‘학교폭력 미투’ 사건은 ‘말’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경우다.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접이식 과도를) 들고 욕을 한 것뿐이다. 억울하다.”
이재영·다영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학폭 논란에 대해 해명한 내용이다. 피해자의 폭로 내용이 일부 다르다는 것인데, 심각한 폭력 행위를 저질러놓고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억울해하는 이들을 공감하는 대중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해명은 '희대의 망언'으로 불리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전직 배구 국가대표 출신이자 쌍둥이의 어머니인 김경희씨의 ‘말’도 사태 악화를 부추겼다.
“고개 들어. 왜 고개 숙여, 고개 숙이지 말고 걸어.”
국내에서 퇴출당한 쌍둥이가 새로 계약한 그리스 배구단 합류를 위해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나서면서 김씨가 딸들에게 한 말이다. ‘잘못이 없으니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후 쌍둥이는 진심 어린 사과 대신 학폭 피해자들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학폭 폭로가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쌍둥이를 바라보는 배구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런데 최근 프로배구 개막을 앞두고 페퍼저축은행 김형실 감독의 ‘말’이 쌍둥이의 학폭 사건에 또다시 기름을 부었다.
페퍼저축은행이 2차례 이재영과 접촉한 사실이 발단이었다. 지난 시즌부터 V리그에 참가한 신생구단인 페퍼저축은행은 꼴찌를 벗어나기 위해 실력이 검증된 이재영의 영입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이재영을 만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구단이 베테랑이나 에이스 영입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구단을 옹호했다. 더 나아가 “(이재영 접촉은) 귀감이 된다. 구단에 감사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김 감독은 이재영 접촉은 ‘전력 보강 추진의 본보기’라며 비판 여론에 반박한 것이다. 전력에 보탬이 된다면 도덕적 흠결이나 사회적 지탄쯤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인식이다. “지금이라도 반성과 사과가 먼저”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그의 말에는 '최소한의 조건만 갖춰진다면 영입하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구단이야 배구판에 처음 발을 디뎠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신화를 이끌고 존경받는 원로 배구인인 김 감독의 학교폭력 인식이 이와 같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학교폭력을 ‘미성숙한 개인의 일탈’로 인식하고 있거나,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폭력을 묵인할 수 있다는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는 것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김 감독과 페퍼저축은행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선수의 특출한 재능이 과오를 덮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미국프로야구에서 뛰었던 강정호가 음주 파문 후 국내 복귀를 시도하다 야구팬들의 강한 반대에 무산된 선례가 이를 정확히 말해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승부조작과 음주운전 등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선수들이 “성적으로 죗값을 치르겠다”는 말과 함께 복귀해도 여론은 그럭저럭 수긍했다. 그러나 이젠 국민의 도덕적 눈높이가 달라졌다. 우리는 선수의 참된 인성이 재능보다 우선적 가치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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