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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참사의 지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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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혼령들의 축일로 알려진 핼러윈은 영국 아일랜드에서 시작돼 미국에서 자리 잡았다. 원래 여름의 끝이자 만성절(11월 1일) 전날 언덕에 모닥불을 피워 악령을 쫓고 행운을 비는 의식이었다. 미국에선 어린이들이 귀신 복장을 하고 ‘사탕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이웃을 방문해 서로 먹을 것을 나누는 작은 명절이 되었다. 유니세프가 1965년부터 핼러윈을 유엔 어린이기금 모금에 활용할 만큼 세계적인 유행도 탔다. 하지만 공포감을 주는 악마 마귀 등이 한국인 정서와 맞지 않아 국내에서 거부감은 컸다.
□ 상황이 달라진 건 미국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대거 유입된 2000년대 들어서다. 클럽 문화와 접목돼 본래 의미와 거리가 있는 젊은층 파티 문화로 정착되는 과정은 다소 한국적이다. 그렇다고 핼러윈이 자유를 분출하는 젊은이 축제가 된 게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29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풍경을 “유령의 집에서 탈출한 생명체들이 도시를 점령한 듯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이란 북한과 함께 핼러윈을 금지하다 2년 전 허용했다. 홍콩 젊은이들은 이른바 핼러윈 가면 시위로 반중 정서를 표출하곤 했다.
□ 핼러윈 축제가 열린 서울 이태원에서 29일 있을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일어나선 안 될 압사 사고로 많은 젊은 생명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번 현장 주변에 200명의 경찰이 있었다고 한다. 줄어든 숫자라고 하나 적지 않은데다 바로 길 건너엔 파출소가, 그 옆 블록에는 119안전센터가 있다. 원인도 찾아야겠으나 어느 한 기관, 누구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경찰, 소방이 합심해 길을 일찍 뚫었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 끝없이 밀려오는 회한은 모두의 마음이겠지만 그것이 소용없는 한탄에 그쳐선 안 된다. 낙타 등을 부러뜨린 지푸라기 얘기가 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무게는 미미하나 낙타 등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하면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많은 사건, 사고는 비직선적이고 상호 간 숨겨진 의존성이 크다. 이번에 참사의 지푸라기가 무엇인지 교훈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핼러윈이 참사 교훈을 새기고 무사를 기원하는 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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