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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영국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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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비(非)백인이지만 영국 주류사회 엘리트 출신 총리가 우리(이민자) 입장과 같을까요?" 지난 2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의 일주일 휴가 마지막 날. 호텔 직원과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마침 TV에서 새 총리로 내정된 리시 수낵(42) 전 영국 재무장관의 모습이 잡혔기에 기대가 클 것 같다고 물었다. 남자 직원은 TV를 힐끔 보더니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며칠째 조식 때마다 인사했던 그는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이다.
새 총리가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기대를 품기보단 현실을 직시한 듯 보였다. '전형적인 금수저', '1조 원 갑부', '인도 억만장자의 사위' 등 수식어는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첫 비백인이자 아시아계 총리라는 입지전적 경력을 가려버렸다. 그의 세련된 외모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까지.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사퇴(20일)한 다음 날, 30여 년간 영국에서 지내 온 지인을 만났다. 그와 차로 이동하다 영국 총리 관저 인근을 둘러싼 취재진과 맞닥뜨렸다. 지인은 "어제 물러난 총리 취재하려나 보다. 최단명 총리였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그다음 총리가 잘 해낼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속을 내비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40여 일 만에 영국 역사상 최단임 총리를 보내고, 곧바로 신임 총리를 맞는 급박한 영국의 모습은 아니었다.
호들갑스러운 건 오히려 언론이었다. 크리스 메이슨 BBC뉴스 정치에디터는 26일 '리시 수낵 총리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감세정책을 내세웠다가 짐을 싼 트러스 전 총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트러스의 비전, 거의 즉각적인 붕괴 및 그 결과가 영국을 국제적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수낵 신임 총리를 향해 "6년 만에 다섯 번째, 올해 세 번째, 두 달 만에 세 번째(총리)"라며 "놀랍고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여론은 냉소적이다. 메이슨 에디터의 질문에 일부 네티즌은 "2년 후 유권자들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약속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에 대해 (총선)투표로 선택하면 된다", "수낵은 새로운 얼굴이 아니다. 그는 엄청난 부자 보수당원이고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보리스 존슨은 기준을 거의 바닥 수준으로 설정했고, 트러스는 그 아래에서 터널을 만들었으며, 수낵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수낵은 당분간 고개를 숙이고 큰 발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수낵은 두 명의 전임자보다 나아지기를 고대한다" 등 비교적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관심 없는 태도는 아니다. '리시 수낵: 영국의 새 총리에 대한 빠른 안내서' 같은 BBC 온라인 뉴스는 연이틀 검색량 톱 10에 올라 인기 있는 정치기사로 꼽혔다. 수낵 신임 총리의 출생과 성장 배경, 재산 상태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영국인들이지만 신임 총리에 대한 정보에는 목말라 있던 것이다. 다만 부산스럽지 않은 건 또 다른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40여 일 천하'로 끝나버린 전 총리의 전철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기에, 더 이상 영국의 위상이 실추되면 안 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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