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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영국이라고?

입력
2022.10.28 04:30
26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정식으로 총리로 임명된 뒤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정식으로 총리로 임명된 뒤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글쎄요. 비(非)백인이지만 영국 주류사회 엘리트 출신 총리가 우리(이민자) 입장과 같을까요?" 지난 2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의 일주일 휴가 마지막 날. 호텔 직원과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마침 TV에서 새 총리로 내정된 리시 수낵(42) 전 영국 재무장관의 모습이 잡혔기에 기대가 클 것 같다고 물었다. 남자 직원은 TV를 힐끔 보더니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며칠째 조식 때마다 인사했던 그는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이다.

새 총리가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기대를 품기보단 현실을 직시한 듯 보였다. '전형적인 금수저', '1조 원 갑부', '인도 억만장자의 사위' 등 수식어는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첫 비백인이자 아시아계 총리라는 입지전적 경력을 가려버렸다. 그의 세련된 외모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까지.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사퇴(20일)한 다음 날, 30여 년간 영국에서 지내 온 지인을 만났다. 그와 차로 이동하다 영국 총리 관저 인근을 둘러싼 취재진과 맞닥뜨렸다. 지인은 "어제 물러난 총리 취재하려나 보다. 최단명 총리였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그다음 총리가 잘 해낼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속을 내비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40여 일 만에 영국 역사상 최단임 총리를 보내고, 곧바로 신임 총리를 맞는 급박한 영국의 모습은 아니었다.

호들갑스러운 건 오히려 언론이었다. 크리스 메이슨 BBC뉴스 정치에디터는 26일 '리시 수낵 총리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감세정책을 내세웠다가 짐을 싼 트러스 전 총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트러스의 비전, 거의 즉각적인 붕괴 및 그 결과가 영국을 국제적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수낵 신임 총리를 향해 "6년 만에 다섯 번째, 올해 세 번째, 두 달 만에 세 번째(총리)"라며 "놀랍고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여론은 냉소적이다. 메이슨 에디터의 질문에 일부 네티즌은 "2년 후 유권자들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약속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에 대해 (총선)투표로 선택하면 된다", "수낵은 새로운 얼굴이 아니다. 그는 엄청난 부자 보수당원이고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보리스 존슨은 기준을 거의 바닥 수준으로 설정했고, 트러스는 그 아래에서 터널을 만들었으며, 수낵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수낵은 당분간 고개를 숙이고 큰 발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수낵은 두 명의 전임자보다 나아지기를 고대한다" 등 비교적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관심 없는 태도는 아니다. '리시 수낵: 영국의 새 총리에 대한 빠른 안내서' 같은 BBC 온라인 뉴스는 연이틀 검색량 톱 10에 올라 인기 있는 정치기사로 꼽혔다. 수낵 신임 총리의 출생과 성장 배경, 재산 상태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영국인들이지만 신임 총리에 대한 정보에는 목말라 있던 것이다. 다만 부산스럽지 않은 건 또 다른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40여 일 천하'로 끝나버린 전 총리의 전철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기에, 더 이상 영국의 위상이 실추되면 안 되기 때문 아닐까.



강은영 이슈365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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