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이 '미얀마 사태' 해결 못하는 진짜 이유

입력
2022.10.27 04:30
25면

지난해 4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아세안 정상들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모여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크메르타임스 캡처

지난해 4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아세안 정상들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모여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크메르타임스 캡처

모든 문제는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제돼야 답이 나온다. 외교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방향성이 없는 성명 발표, 안 될 것을 알기에 동의하는 서명 등은 절대 상황을 바꿀 수 없다.

이 같은 '눈치보기 외교'가 초래한 최악의 사례는 미얀마 사태다. 쿠데타가 벌어진 지 1년 9개월. 26일 기준으로 미얀마 군부의 총탄에 학살된 민간인 수가 2,391명에 달하지만,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방관하고 있다.

아세안은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 표면적 이유를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동남아 외교 현장 취재에서 파악되는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한 단어, '군부'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엔 역사로 남은 군부 통치가 동남아에선 현재 진행형이다. 당장 군부가 집권 중인 태국이 그렇고, 군부가 권력의 '뒷배'인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도 미얀마를 비난하기 어렵다. 미얀마 군부의 몰락이 자국 정치상황에 '불씨'가 될 수 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다른 아세안 회원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군부 집권의 반대어가 '자유와 민주성의 보장'이라는 것을 잘 아는 필리핀은 올해 6월 '독재가문 시즌2'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미얀마에 대한 강경기조를 거둬들였다.

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내년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에 집중할 뿐, 미얀마 사태는 후순위로 미뤘다. 대표적 반(反)군부파인 말레이시아도 다음 달 실시되는 조기 총선 때문에 미얀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속내를 숨긴 아세안은 27일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장관 긴급 회의를 진행한다.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미얀마의 아세안 회원국 자격 박탈' 정도의 절충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미 외교적 고립을 자처하는 미얀마에 탈(脫)아세안은 아무런 타격이 되지 못한다. 삶이 바빠도 '민주화'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지금의 아세안은 우리에게 비극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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