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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권 폐기하자 정관수술 급증…"남성의 책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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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텍사스주(州) 오스틴에 사는 키스 라우에(23)는 지난해 정관수술을 받았다.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대법원이 폐기할 예정이란 언론 보도를 보고 결심을 굳혔다. 3살짜리 딸이 있어 또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고, 파트너가 피임약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대법원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선언'이기도 했다. 라우에는 "파트너가 괴로워한 것을 안 이후로 내가 피임을 책임지겠다는 결정을 하는 건 쉬웠다"고 했다.
미국 대법원이 올해 6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이후 보수 성향의 주(州)를 중심으로 정관수술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플로리다의 한 의료시설은 "정관수술을 받는 30대 미만 남성이 두 배로 늘었다"고 미 CBS뉴스에 말했다. 뉴욕, 캘리포니아, 아이오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원격의료 조사기관 이너바디 리서치의 연구 결과 판결 후 일주일간 정관수술 의료기관을 묻는 질문의 인터넷 검색량이 8.5배나 늘었다.
피임 책임이 주로 여성에게 부과돼 온 것을 고려하면 정관수술 증가는 이례적인 변화라고 BBC는 짚었다. 2015년 유엔 조사 결과 대부분의 저개발국에서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 비율은 0~2% 수준에 그쳤다. 미국도 10.8%였다. 당시 국제의학 저널 '란셋'의 한 연구는 "성평등이 중요하다는 국제적 합의는 오래 존재해왔지만, 정관수술 건수와 평등 사이엔 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파트너에게 등 떠밀려서 선택했다"는 정관수술의 이유도 "성관계의 책임을 동등하게 지기 위해"라는 능동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알렉산더 파스투스자크 미국 유타대 비뇨기과 교수는 "과거엔 남성들이 배우자가 원해서 수술을 받으러 왔다면, 대법원 판결로 여성의 선택권이 제한된 이후엔 남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책임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성의 건강을 위험에 빠트리는 판결에 대한 '정치적 반대'라는 의미도 있다. 임신중지권 폐기 이후 여성이 합법적이고도 안전한 임신중지 수술을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입법이 잇달아 추진되고 있다.
정관수술 증가는 경제적 문제와 기후 재난으로 인한 위기의식, 성평등 의식 확산 등에 따른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2007~2009년 세계 경제위기 때에도 전 세계의 정관수술 비율은 34% 증가했다. 당시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높은 실업률이 수술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엔 선진국의 정관수술 증가가 두드러진다. 호주 최대 규모 정관수술 센터 '마리 스토프스'는 2020~2021년 30세 미만 남성의 수술이 20% 늘어났다고 밝혔고, 영국과 중국에서도 최근 젊은 남성들의 수술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변화가 지속되기 위해선 '임신과 피임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리틀존 미 오리건대 사회학 부교수는 "남성이 파트너를 위해 '고결한 일'을 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동등한 책임이 있다고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남성에게 책임이 있다는 개념이 퍼져야 진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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