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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카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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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격식을 갖추고 조용하게 이야기 나눠야 할 식사 자리라면 오마카세 식당을 찾는다는 직장인이 제법 늘었다. 원래 일본어 오마카세(おまかせ)는 타인에게 판단이나 처리 등을 맡긴다는 뜻인데, 외식업계에선 ‘맡김 차림’ 정도로 해석된다. 오마카세 식당에선 정해진 메뉴대로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요리사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다. 손님이 요리사를 믿고 자신의 한 끼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 오마카세 식당은 대개 비싸다. 1인당 수십만 원씩 내는 곳도 있다. 메뉴도 스시나 한우처럼 가격대가 높은 게 많다. 그런데 최근 오마카세 식당이 빠르게 늘면서 메뉴도 가격대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포모도로나 봉골레랑은 전혀 다른 생면부지의 파스타 오마카세, 여러 가지 술을 가미해 만드는 커피 오마카세도 등장했다. 심지어 생선을 직접 갈아 굽고 튀겨 만드는 오뎅 오마카세까지 나왔다. 오마카세의 원조 일본에선 저렴한 서민 식당도 오마카세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가정식 백반집은 오래전부터 오마카세였다.
□ 오마카세가 음악계로 넘어왔다. 일부 클래식 공연이 연주할 곡을 사전에 정해두는 전통적 방식에서 탈피해 오마카세 스타일을 접목하고 있다.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정도로 주제만 잡아놓고 실제 공연에서 악기나 음향 상태, 공연장 분위기 등에 따라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곡을 결정하는 식이다. 그렇게 치면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음악다방이야말로 오마카세 아니었을까. 그날 날씨와 분위기에 맞춘 자체 선곡으로 낭만과 위로를 안겼던 디스크자키가 있었으니 말이다.
□ MZ세대 사이에는 일러스트, 액세서리 같은 콘텐츠나 굿즈가 필요할 때 기성품을 사지 않고 창작자에게 제작을 맡기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고객이 일일이 세부사항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창작자가 알아서 만들어주기 때문에 커스터마이징(맞춤식)과 구별되는 콘텐츠 오마카세란다. 오마카세 유행이 획일성을 멀리하고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세태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새로울 것 없는 서비스를 외래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도 다 일리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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