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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입력
2022.10.25 22:00
27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일인 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 모습. 뉴스1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일인 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 모습. 뉴스1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하는 시네마투게더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가하게 된 연유였다. 시네마투게더는 2박 3일간의 일정 동안 열 명의 멘티 관객과 멘토가 선정한 영화를 함께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평소라면 온전히 내 취향대로 선택해서 관람했을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책임감과 일종의 부담감도 생겼다. 고심 끝에 나는 이번 선택의 최우선 기준을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로 선정했다. 어떤 의미로든 모난 구석이 있거나, 형식이 생소한 작품들 중에 빛나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쉽게 개봉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은 영화들로 선정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장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하기 전까지는 '시네필'(무료관람 등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영화를 많이 봐서 시네필이라기보다는 영화제에는 다양한 배지들이 있는데,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신청할 수 있는 시네필 배지가 있다. 시네필 배지를 신청하면 하루에 4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이 시네필 배지도 만능은 아니다. 당연히 많은 영화 학도들이 그 배지를 갖고 있고, 화제작들은 금방 매진되기 일쑤였다. 당시 나는 당장의 가장 보고 싶은 영화들, 화제가 된 영화들 위주로 시간표를 짠 이후 치열한 티케팅에 참전했다.

하지만 대개 첫 번째로 선택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고, 같은 시간대에 상영하는 다른 작품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그런 영화들은 국내외 개봉이 쉽지 않은 작품이 대다수였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내 감상들은 작품마다 제각각 달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전방에 놓여 있는 영화들을 보는 소중함과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다. 운이 좋으면 다시 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아무리 볼 기회를 찾으려고 해도 다시 접할 수 없는 작품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영화들은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거의 모 아니며 도인 경우가 많다. 뚜렷하지 않더라도 빛나는 지점을 치열하게 탐구해 나가며 특별함을 획득해내는 영화도 있고, 때때로 만듦새가 너무 좋지 않아 끝까지 보는 것이 마치 훈련처럼 느껴지는 영화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의 좋고 나쁨을 떠나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설령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이 모나고 투박하게 빛나는 영화들을 보다 보면 영화의 순수함과 본질에 대해 더 강렬하게 각인되곤 한다.

2박 3일간의 여정 동안 여섯 편의 영화를 보는 내내 멘티들은 때때로 잠에 들기도, 빛나는 눈으로 열띤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중적인 영화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언제나 보편적인 이야기에는 힘이 있고, 또한 다수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평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혹여 개봉을 하지 않더라도, 그 영화가 실패에 더 가까이 놓여 있다 하더라도 영화를 보면서 빛나는 한 조각을 발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취다. 그 조각은 잊히지 않고 마음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인생을 보는 관점을 바꿀 수도, 삶의 시야각을 좀 더 확장시켜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만약 '왜 영화들은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가' 회의감이 든다면, 불쑥 영화제를 찾아 절대 개봉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어떨지 권해 본다.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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