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아파트에도 OS가 들어간다" 주거 통합 플랫폼 개발한 이건구 HT비욘드 대표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새로 지은 아파트라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있다. 바로 주거 통합 플랫폼이다. 특히 고급형과 첨단을 지향하는 아파트라면 주거 통합 플랫폼 제공 여부가 중요한 변수다.
주거 통합 플랫폼이란 출입 관리부터 각종 편의시설 이용 등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편리한 생활을 위해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다. 스마트폰 앱으로 방문객에게 아파트 공동출입문을 열어주고 냉난방과 조명을 관리하며 운동시설, 식당, 카페 등 커뮤니티 센터로 부르는 공용 시설의 예약과 결제까지 한다. 쉽게 말해 아파트 생활을 돕는 운영체제(OS)인 셈이다.
이건구(46) 대표가 2015년 창업한 에이치티(HT)비욘드는 '바이비'라는 주거 통합 플랫폼으로 유명한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굴지의 건설사들이 만든 유명 아파트는 이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이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바이비가 설치된 아파트의 입주민은 스마트폰에서 앱을 실행하면 다양한 일을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가구별 하자 접수, 전체 공지사항 등 관리 사무실과 소통하는 일부터 가구 내 조명과 냉난방 제어, 가전제품 작동 및 전기차 충전, 현관문 여닫기, 승강기 호출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요. 심지어 동네 지역 상가와 연계한 제품 구입이나 배달 서비스도 가능하죠. 한마디로 생활이 달라져요."
과거에 이런 일들을 스마트폰으로 하려면 각기 다른 기능의 앱을 설치했지만 이제는 바이비 앱 하나로 해결한다. 필요한 비용 결제도 앱에서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수영장, 식당, 운동시설 등 커뮤니티 시설 이용비, 전기차 충전비, 인근 상가 이용료 등도 관리비에 합산해 결제할 수 있어요."
앱이 제공하는 기능은 60가지가 넘는다. "관리사무소에서 하던 일을 기준으로 삼으면 500가지 이상의 일을 앱으로 처리해요."
아파트에 새로운 시설이 생기면 앱에 기능을 추가하면 된다. "단지에 전기차 충전 시설이 설치되면 앱에 해당 기능을 붙일 수 있어요. 내부 개발을 통해 1, 2주면 가능하죠. 일부 아파트는 단지 안에 오페라 극장, 식물원, 영화관, 볼링장이 들어서요. 앱에 관련 기능을 붙이면 이런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죠."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직원 55명 중 40명을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으로 채웠다. 이를 LG전자 출신의 개발총괄(CTO)인 류인호(41) 부대표가 이끌고 있다.
바이비가 설치된 아파트는 전국 200개 단지에 이른다. 가구 수로 15만 가구, 앱 이용자만 25만 명이다. "새로 짓는 아파트나 재건축과 리모델링 아파트에도 많이 들어가요."
서울 나인원 한남,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포스코건설 '더샵', GS건설 '자이', 삼성물산 '래미안', 대우건설 '푸르지오', 롯데건설 '롯데캐슬' 등 알만한 아파트 브랜드들이 바이비를 사용한다. "디에이치, 더샵, IS동서, 한양 '수자인', 반도건설 '유보라', 금호건설, 삼구건설 등 7개 건설사의 신축 아파트는 기업간거래(B2B)에 따라 무조건 바이비가 들어가요."
이렇게 되면 바이비 제공 여부가 아파트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이 대표도 바이비가 설치된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가 살기 좋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플랫폼이죠. 한번 써보면 바이비 없는 생활로 돌아가지 못해요."
그래서 바이비가 설치된 아파트 앱에 '바이비' 표시가 함께 붙는다. "지금까지 아파트 명칭으로 앱을 제공했는데 여기에 바이비를 함께 표시하기를 원하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어요. 건설사들이 바이비의 효용성과 경쟁력을 알고 있다는 뜻이죠."
이 때문에 여러 건설사들이 바이비 도입을 논의한다. "신세계건설 등 여러 건설사들이 추가로 바이비 도입을 논의 중입니다."
심지어 일부 건설사는 아예 협력업체를 만날 때 이 대표의 동행을 요청한다. "바이비를 도입한 한양건설이 아파트에 설치할 가전업체를 만날 때 함께 동행해요. 바이비가 사물인터넷(IoT)으로 각종 가전을 작동할 수 있어서 이런 기능을 협의하기 위해서죠."
그만큼 시장이 넓다. "국내 아파트 단지가 2만2,000개입니다. 전체 인구의 51%가 아파트에 살아요. 그만큼 우리가 개척할 시장이 넓다는 뜻이죠."
바이비는 아파트 주민들만 편한 것이 아니다. 관리업체들도 편하다. "관리용 앱이 따로 있어요. 관리용 앱은 단지 내 시설 및 현황 관리 등을 손쉽게 할 수 있죠. 주변 상가에 제공하는 앱도 따로 만들었죠."
관리용 앱은 일손을 줄여 주민들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관리 인력을 줄일 수 있으니 관리비를 낮출 수 있죠."
그 바람에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문제죠. 대신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는 고급 일자리는 늘어나요."
모든 앱과 관리도구는 다달이 비용을 받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된다. 즉 바이비 서버에 접속해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형태다. 한 군데서 관리 가능한 클라우드 서비스의 장점을 이용하면 여러 아파트 단지를 묶어서 관리하는 통합 관리센터도 등장할 수 있다. "같은 지역의 여러 아파트를 통합해 관리하면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서비스 품질을 올릴 수 있죠. 1, 2년 내 이런 서비스를 생각 중입니다."
단, 주택관리법은 넘어야 할 장벽이다. "주택관리법상 공동 주택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가진 관리소장이 무조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통합관리센터가 관리사무소를 돕는 역할을 하고 기존 관리사무소는 현장 업무 위주로 협력하면 되죠."
수익은 월 이용료를 통해 거둔다. "건설사에 처음 공급할 때 3년 치 가구당 이용료를 한꺼번에 받아요. 3년 지나면 주민들이 이용료를 내죠. 바이비를 이용한 지 3년 이상 된 아파트가 아직 없어서 주민들에게 이용료를 얼마나 받아야 할지 정하지 못했어요. 편리하게 살기 위한 수수료인데 계속 이용 여부는 입주민 회의에서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파트 단지 외부의 상점들을 앱에 연결하는 경우 별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주민들이 앱으로 주변 상점에서 결제하면 수수료를 받죠. 또 청소나 유지보수 서비스도 별도 수수료를 받아요. 앱에 광고하면 광고비를 받고요. 플랫폼 서비스여서 매출 경로가 많아요."
매출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2020년 54억 원, 지난해 68억 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 80억 원 이상을 예상해요."
이 대표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KDB산업은행에서 6년간 투자 업무를 했다. 이후 유학을 떠나 미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부친의 사업을 이어 받았다.
부친이 유명한 이내흔 전 현대건설 사장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오른팔로 현대그룹을 일으켜 세운 1등 공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현대그룹으로 옮긴 그는 현대건설과 현대통신(현 현대HT) 등의 계열사 대표를 거쳐 대한야구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후 은퇴하면서 현대HT를 인수했다.
이 대표는 이를 이어 받아 현대HT 대표를 겸하고 있다. 현대HT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인터폰 등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을 공급하는 회사다. "현대HT는 신축 아파트 기준으로 홈오토메이션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해 1위 업체입니다. 연간 10만 가구에 장비를 공급해요. 여기 대표를 맡으면서 주거 시장에 관심을 가졌죠."
어찌 보면 이 대표는 금수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 또한 그의 경쟁력이다.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알기 힘든 인맥들을 많이 알게 됐죠. 현대HT 대표를 하며 스타트업 대표 명함만으로 만나기 힘든 기업과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덕분에 현대HT와 HT비욘드는 서로 연계할 수 있는 사업이 많아요. 굉장한 장점이죠."
이 대표가 HT비욘드 창업 때 가장 고민한 것은 개발자다. 그때 친구 소개로 만난 공동창업자가 류 CTO다. "뛰어난 개발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서 만난 사람이 류 CTO였죠. 한 달 동안 매달려 영입했어요."
고려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류 CTO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LG전자에서 4년간 휴대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LG전자에서 근무하며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하드웨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경험했어요. 크게 도움 됐죠. 하지만 회사의 사업 방향이 제 생각과 달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류 CTO는 LG전자를 그만두고 SK텔레콤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그런데 입사를 앞둔 시점에 이 대표를 만나 스타트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기업으로 옮기면 꿈꾸던 삶을 살지 못할 것 같았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는 생각에 합류했죠."
류 CTO는 합류 전 네이버 출신 등 뛰어난 개발자 6명으로 미리 개발팀을 꾸렸다. "창업할 경우 같이 일하기 위해 염두에 둔 개발자들이 있었죠."
이 대표의 향후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미주 및 동남아 국가들과 수출 상담을 하고 있어요. 베트남 등 일부 국가에서 2, 3년 내 완공되는 아파트에 바이비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관련 투자도 진행 중이다. "이미 30억 원을 받았고 조만간 후속 투자가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100억 원대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의 꿈은 바이비가 설치된 단지들이 동네와 도시로 확장되는 스마트 시티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주거 서비스를 하고 싶어요. 공간에 대한 만족이 동네와 도시로 확장되는 하이퍼 로컬 시티를 꿈꾸고 있어요."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