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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촌놈의 노스탤지어… 정글 같던 코엑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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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소설가인 강보라 박세회 작가가 동네에 얽힌 사회 문화적 단편을 감성적 필치로 담아냅니다.
“따라오세요. 다른 매장으로 안내해드릴게요.” 나는 한 무리의 대기 손님을 이끌고 가게 문을 나섰다. ‘테이블이 만석이니 지금부터 오는 손님은 2호점으로 안내하라’는 홀 매니저의 돌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2호점은 1호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지근거리에 가게 하나를 더 차릴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코엑스몰의 유명 수제 햄버거집이었다.
문제는 그날이 2호점 개장 첫날이고 나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매니저에게서 가게 위치를 전달받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온 나는 인파 속을 헤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뒤따라오는 손님들을 확인하고 천장 안내판으로 황황히 눈을 돌렸다. 산마루길, 호수길, 수풀길, 폭포길…… 호수는 어디고 폭포는 또 어디인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기요…… 정말 죄송한데 여기서 잠깐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황당해하는 손님들을 뒤로 하고 타잔처럼 뛰기 시작했다. 산마루길을 지나 호수길로, 수풀길을 넘어 폭포길로…… 몰(mall) 전체가 출구 없는 정글처럼 나를 조여 왔다. 제대로 왔나 싶으면 아까 온 길, 비로소 익숙한 길이다 싶으면 갈림길이었다. 그래, 이건 몰래카메라다. 이곳은 누군가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복잡하게 설계한 미로다. 망상이 극으로 치달을 때쯤 거짓말처럼 2호점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버려둔 손님들이 나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차분히 메뉴판을 살피고 있었다. 내 생애 첫 알바는 그렇게 열흘 만에 막을 내렸다.
생애 두 번째 알바 역시 코엑스몰에서 구했다. 집에서 가깝고, 더운 날 시원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였다. 월드컵 4강 진출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여름이었고, 나는 햇볕 없는 지하 생활의 해로움을 자각하지 못할 만큼 젊었다. 일은 옷가게 재고 정리였다.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거리는 코엑스몰 지하에 그렇듯 차갑고 삭막한 물류창고가 숨어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지하보다 더 지하인 그 창고에는 브랜드 로고가 박힌 종이상자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빽빽하게 쌓여있었다. ‘핸디’라 불리는 바코드 스캐너로 옷이나 신발에 붙은 태그를 훑으면 ‘삑’ 소리와 함께 제품의 품명과 수량이 자동으로 기계에 입력되었다. 알바생들은 서로 멀찌감치 떨어진 사다리에 걸터앉아 한 손에 핸디를 들고 비닐에 싸인 옷들을 셈했다. 동굴처럼 괴괴한 창고에 삑, 삑, 하는 기계음만이 단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점심시간에는 점장이 준 식권을 들고 푸드코트로 향했다. 천장에 유리 피라미드가 설치되어 있어 코엑스몰에서 유일하게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곳이었다. 참, 거기에는 호수도 있었다. 인공으로 조성한 작은 호수였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전의 식사 환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햄버거집에서 일할 때는 어둑어둑한 창고에서 직원들과 교대로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흰쌀밥에 세 가지 반찬이 나왔는데 그 세 가지가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라 먹고 나면 혀가 아리고 속이 쓰렸다. 그에 비하면 한식, 중식, 양식 등 16개 식당을 갖춘 푸드코트는 호텔 뷔페나 다름없었다. 가장 즐겨 먹은 메뉴는 사람 얼굴만 한 이탈리아식 조각피자였다. 그 가게 현수막에는 이런 슬로건이 적혀있었다. ‘뉴요커’가 선정한 최고의 프리미엄 피자. 세계 43개국에서 각광받는 세계인의 피자. 나는 유리 바닥면 아래로 호수물이 흐르는 푸드코트에서 ‘뉴요커’가 극찬한 세계인의 피자를 먹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세계인이 모여드는 무역센터의 중심, 코엑스몰에 꼭 어울리는 음식 아니었을까?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창고 밖으로 나오면 몰 한복판에 있는 줄리아나 나이트가 문 밖으로 쿵쿵거리는 저음을 쏟아냈다. 삼성역과 연결된 밀레니엄 광장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메가박스 티켓 부스에는 평일 주말할 것 없이 긴 줄이 늘어섰다. 그런 풍경에 역행하듯 걷다 보면 나도 저들처럼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나는 젊었지만, 종일 고생해서 번 돈을 하루 만에 탕진할 만큼 젊지는 않았으므로 그럴 때는 아쉬운 대로 다른 오락거리를 찾았다. 당시 코엑스몰에는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많았다. 청음용 헤드폰이 비치된 에반레코드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신보를 감상하거나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서점 반디앤루니스에서 비닐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외국 잡지를 뒤적이는 것도 그런 즐거움 중 하나였다. 메가박스 옆에 있는 TTL존도 오갈 데 없는 청춘들의 가성비 넘치는 쉼터였다. 통신사에서 발급받은 멤버십 카드만 있으면 천연이끼로 장식한 산뜻한 공간에서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최신 DVD 영화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알바의 추억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음에도 코엑스몰은 이후 쭉 나의 변함없는 놀이터였다. (음식이) 맛없다, (물가가) 비싸다, 툴툴거리면서도 인파로 북적이는 밀레니엄 광장을 지나 회전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고 걸음이 빨라졌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쾌적한 실내에 백화점처럼 잘 정돈된 매장, 다양한 외식 공간에 초대형 멀티플렉스까지, 코엑스몰은 온갖 콘텐츠가 집약된 대도시 서울의 축소판이었다. 정오쯤 방문해 영화 보고 밥 먹고 쇼핑하고 길목마다 마련된 체험시설까지 즐기고 나면 바깥에는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로 한 시절을 보내고 나니 대자본이 만들어낸 이 거대한 상업 공간에 묘한 애정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코엑스몰에는 국내 1세대 복합쇼핑몰다운 실험적인 면이 분명히 있었다. 예컨대 ‘반스앤노블’로 대표되는 미국형 서점을 벤치마킹한 반디앤루니스에는 다른 대형서점에서 보기 어려운 500석 규모의 독서 공간과 인터넷 라운지가 갖춰져 있었다. 여러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17개 스크린으로 한국 멀티플렉스의 표준을 제시한 메가박스는 하루 입장객 약 3만2,000명을 기록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언뜻 프랜차이즈 천국처럼 보이는 코엑스몰에는 의외로 다양한 취향이 공존했다. X-BOX 등 다양한 비디오 콘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세중게임월드, 프라모델과 무선조종(RC), 건담 등을 판매하는 국내 최대 모델샵 ‘아셈하비’, 120만 원짜리 초대형 토토로 인형을 앞세운 키덜트 성지 ‘애니랜드’ 등이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공간과 위화감 없이 어울렸다.
시민들을 위한 무료 행사도 많았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이벤트홀에서 가수 비의 미니콘서트가,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커다란 트리를 배경으로 아카펠라 그룹의 공연이 열리는 식이었다. 이런 코엑스몰을 두고 한 매체는 ‘불특정 다수에 평등하게 개방된 공간으로서 도심 광장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코엑스몰이 생기기 전 그곳은 무역센터 지하의 작은 아케이드에 불과했다. 우리 동네에는 없는 서울문고와 웬디스가 있어 이따금 놀러갔던 그 통로 공간이 2000년 5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개최에 맞춰 코엑스몰이라는 대형 복합쇼핑몰로 거듭났을 때 나는 엄청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여의도공원의 절반, 잠실 종합운동장의 14배에 이르는 그것은 내가 사는 도시의 생태계를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었다. 무역센터, 아셈타워, 호텔, 백화점, 공항터미널 등 다양한 건축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 또한 지하철역과 연계된 기존 지하상가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루 유동인구가 10만 명에 이르던 이 초대형 상권은 그러나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더 크고 세련된 복합쇼핑몰로 발길을 돌리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14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실시했다가 복잡한 내부 동선으로 오히려 이용객들의 불만을 산 코엑스몰은 이후 사업운영권을 따낸 신세계가 ‘스타필드 코엑스몰’로 재개장하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은 분위기이긴 하나, 전성기 시절의 실험성이나 다양성은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지난 9월 아시아 최초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을 관람하러 코엑스에 갔다가 오랜만에 코엑스몰에서 시간을 보냈다. 복합쇼핑몰에서 파는 음식답게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파스타를 먹고 오래 전 푸드코트 자리인 별마당도서관을 지나는데 이런저런 추억이 머리를 스쳤다. 햇살이 내리쬐는 푸드코트, 페퍼로니가 잔뜩 올라간 조각피자, 삑, 삑, 하는 기계음 소리…… 나와 함께 이 코너를 연재하는 박세회 작가는 지난 회 원고에서 2000년대 초반의 홍대를 회고했다. 2000년대 초반이라면 내가 한창 코엑스몰에 드나들던 시절이다. 남편이 홍대병 걸린 형, 누나들과 함께 벨 앤 세바스찬의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었나.
아마도 에반레코드에서 새 음반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머라이어 캐리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박지성 선수가 히딩크 감독에게 아이처럼 안기는 장면을 본 것도 코엑스몰 앞 광장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서였다. 밤늦게 혼자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고 텅 빈 쇼핑몰을 빠져 나올 때의 그 야릇한 감흥도 떠오른다. 생전에 아버지가 ‘실미도’를 보겠다며 그곳으로 40년 만에 극장 나들이를 하셨다가 실제 전쟁터에 있는 듯한 사운드에 충격을 받아 얼얼한 표정으로 돌아오셨던 것도. 어쩌면 나 같은 도시 촌놈에게는 ‘몰’이야말로 다양한 추억이 복잡하게 얽힌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잠실 롯데월드몰이, 누군가에게는 영등포 타임스퀘어가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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