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뒤흔든 채권시장… 2000억이 50조 넘는 부메랑으로

정치가 뒤흔든 채권시장… 2000억이 50조 넘는 부메랑으로

입력
2022.10.24 19:30
수정
2022.10.24 21: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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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강원지사 "GJC 회생 신청" 결정 이후
채권시장 쇼크… 어음금리 13년 만에 최고치
정부 50조원 대책 내놨지만… 장기화될 수도

김진태 강원지사가 21일 오후 강원 춘천시 강원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강원도 보증 채무 상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강원도교육청 제공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빌린 2,050억 원을 대신 갚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GJC에 대해 회생 신청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김진태 강원지사의 이 발표는 말 그대로 '폭탄 발언'이었다. 가뜩이나 기준금리 인상·부동산 경기 침체로 위축된 채권시장은 ‘김진태발 지급보증 철회’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패닉에 빠졌다. 2,000억여 원에 불과한 GJC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는 기업 자금 경색이라는 위기로 번졌고, ‘50조 원+α' 규모의 유동성 지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부메랑으로 끝날지, 위기 도미노를 부를지 여부도 현재로써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강원도 "돈 줄게"… 2년 뒤 "못 줘"

사태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의 출자회사이자 레고랜드 사업을 담당하는 GJC는 2020년 2,050억 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ABCP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발행하는 어음. 하지만 레고랜드 사업이 수차례 무산됐던 만큼,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선 추가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강원도는 ABCP 지급보증을 섰다. '강원도가 보장해 줄 테니 믿고 투자하시라'는 신용 보강이다. 만기는 지난달 29일이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깨져버렸다. 올해 6월 지방선거로 강원도에 입성한 국민의힘 출신 김 지사가 더불어민주당 출신 최문순 전 지사의 약속을 저버리면서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 설립이 여러 차례 좌초된 후 문화재위원회가 승인한 2014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화재위가 레고랜드 사업을 사실상 승인했습니다. 만약 이거 안 되면 소양강에 뛰어내리겠다고 했는데 안 그러게 돼서 다행입니다”라고 썼다. 강원도 출신으로 레고랜드 사업에 적극 찬성했던 그였다.

그러나 김 지사는 표변했다. 지사가 된 그는 '지급 보증' 대신 '회생 신청'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마디로 강원도가 빚을 대신 갚지 않겠다는 얘기다. 결국 최고 신용등급인 'A1'을 받았던 ABCP는 만기에 돈을 지급하지 못했고 6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최고신용 지자체도 발 빼는데…" 불안감 확산

김 지사의 발언은 채권시장 쇼크의 도화선이 됐다. 투자자들은 채권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급 보증한 어음도 부도가 나는 판국인데, 하물며 증권사·건설사 등이 보증한 어음이나 회사채 등을 어떻게 믿느냐는 불신이 팽배해진 탓이다. 일부 증권사·건설사 부도설을 담은 지라시도 광범위하게 확산, 금융당국이 엄벌하겠다고 나서야 할 정도로 불신은 진화하기 어려운 들불이 됐다.

김 지사는 21일 다시 지급보증을 약속으로 선회하고, 이틀 뒤 정부가 부랴부랴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 원을 포함해 ‘50조 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았지만, 채권시장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불신의 암세포 전이", "늑장 대응" 비판 쏟아져

정치권에선 김 지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김 지사가 속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4일 "나비 날개가 태풍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모든 일에 신중해야 한다”며 김 지사를 나무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지사를 ‘경제 잡는 선무당’이라고 규정하고 “자금조달 시장에 지방정부, 국가가 지급보증한 것도 못 믿는 불신의 암세포가 급속도로 전이되고 있다. 이 엄청난 투자 위축과 유동성 경색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금융당국의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됐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명확한 조치를 했다"면서도 "최근 자금시장 경색 문제는 금리 인상 등 기본적으로 불안 요소가 깔린 상황에서 레고랜드 등 불안을 가속하는 여러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요동치던 채권시장, 정부 대책에 소강

불신은 채권 금리로 나타났다. A1 등급의 91일짜리 어음 금리는 강원도의 GJC 회생 신청 선언 직후 1%포인트 넘게 치솟아 2009년 1월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까지 상승했다.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AA-)는 이미 12년 만에 5%를 넘어섰다. 다만 전날 정부 대책 발표로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기도 했다. 이날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는 연 5.592%로 전 거래일보다 0.144%포인트 떨어졌다. 국고채 금리도 하락해, 전 거래일 대비 3년 만기(연 4.305%)는 0.190%포인트, 10년물(연 4.503%)은 0.129%포인트 각각 내렸다. BBB- 등급 회사채 금리는 0.145%포인트 내린 연 11.446%로 마쳤다.

김 지사의 방아쇠, 도미노 위기 부르나

관건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채권시장이 장기 안정이냐 아니면 도미노 위기로 빠지느냐다. 시장에선 이번 사태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회사채 발행이 잔뜩 움츠러들면서 기업들은 은행 대출로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은행들은 20조 원 규모의 채안펀드에도 출자해야 한다. 기업대출ㆍ채안펀드를 위해 은행 역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대출 여력과 출자 등으로 자금 확충이 필요한 상황으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려면 고금리 은행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어 “대출받을 수 있는 기업은 그나마 신용도가 높은 건전한 기업”이라며 “그렇지 못한 기업들의 자금 경색은 더욱 심해져 줄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경기까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거 투자한 제2금융권의 부실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정현 기자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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