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서 쏘아 올린 시장 혼돈... "금융사에서 돈 빼라" 루머마저 난무

입력
2022.10.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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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지사 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선언에
"공사채도 저런데 회사채는 어떻겠냐"
기업들 유동성 확보 경쟁에 '줄도산' 우려

기준금리 연속 인상으로 예금(수신) 금리가 오르면서 9월 은행권 정기예금이 32조5,000억 원 증가했다. 역대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서울 시내의 한 은행에 붙은 정기예탁금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기준금리 연속 인상으로 예금(수신) 금리가 오르면서 9월 은행권 정기예금이 32조5,000억 원 증가했다. 역대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서울 시내의 한 은행에 붙은 정기예탁금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XX는 위험하다. 돈 빼라."

강원도발(發) 금융시장 위기설이 온라인을 공포에 빠트리고 있다. 금융시장 현업 종사자를 자칭하는 이들이 "회사가 서둘러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면서 특정 금융사 및 업권을 지칭해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올리는 등 불안한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이는 금융시장 한편에서 진행 중인 '현금 쟁탈전'의 단면이 온라인으로도 노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저축은행이 고금리 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회사채로도 고금리 채권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완화 정책으로 자산 가치가 늘면서 금융시장에 입성한 개인 투자자들이 금리 변동과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도 엿보인다.

"든든한 형님"의 배신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1일 오후 강원 춘천시 강원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강원도 보증 채무 상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강원도교육청 제공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1일 오후 강원 춘천시 강원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강원도 보증 채무 상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강원도교육청 제공

현재 시장의 혼돈은 지난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회생신청을 공언하면서 촉발됐다. 김 지사가 강원도에서 지급보증한 GJC의 자산유동화증권(ABCP)의 만기 연장을 거부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관련 특수목적법인(SPC)이 최종 부도처리된 것이다.

24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증권사에서 이들 증권을 보유한 것은 뒤에 든든한 형님(강원도)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강원도가 어려워지면 중앙정부가 나설 것으로 보고 국채에 준하는 신용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 (강원도가 이를 뒤집으면서) 시장에 굉장히 부정적 신호가 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혼란은 채권시장 전반으로 확산했다. '국채에 준하는 지방채와 공사채가 위기라면, 다른 회사채는 말할 것도 없다'는 인식이 번진 탓이다. 한국전력공사와 도로공사 등 신용도 트리플A로 분류되는 공기업 발행 채권이 유찰되고, 민간 건설사들도 채권 발행 대신 유상증자와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직접 채무를 보증하는 데 이른 것이다. 특히 한전은 발행금리 5% 채권을 내놓고도 일부가 유찰돼 시장에 큰 충격을 던졌다.

애초 경기 상황이 기업의 자금 조달에 우호적이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 박 교수는 "특히 건설사에 줄도산 우려가 있는 것은 금리 인상으로 이자비용이 늘어난 데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박으로 최소 공사비가 20%에서 30%대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국 대응 늦었다" "50조론 부족" 지적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입장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입장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잖아도 누적된 불안에 강원도가 결정타를 날려 채권시장이 혼돈에 빠진 가운데 당국의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9월 28일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국채 금리가 계속 상승하고 있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채권의 매도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달 16일부터 채권안정기금을 풀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안 풀렸다"고 주장했다. 또 "그다음에는 금융당국이 시중 은행에 은행채를 발행해 자금을 빨아들이지 말라고 요구를 했다. 금융감독원은 자금시장 경색 루머를 퍼트린 범인을 잡겠다고 했다. 이런다고 은행채를 사던 투자자들이 회사채를 사겠냐"고 지적했다.

결국 23일 개최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는 '50조 플러스 알파'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하겠다는 방안이 나왔다. 하지만 박정호 교수는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13조 원, 내년 상반기까지 합치면 약 68조 원으로 집계가 되고 있다"면서 "50조는 조금 모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여기에 더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채권을 조기 상환하면서 우리는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이게 오히려 시장에서는 더 우려를 확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가 다 해준다'는 교훈 되면 곤란"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중앙정부와 금융당국은 어쨌든 강원도에서 지른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함의도 경계했다.

박정호 교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각 지방정부가 오히려 지역 개발을 위해 지방채를 남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나서는 걸 강원도가 기다렸을 수도 있다"면서 "'급한 불은 국가가 꺼 준다'는 인식이 번지면 개인부채, 회사부채, 지방부채도 국가가 다 떠안는 형태가 돼 버린다"고 우려했다.

그는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고 내수 경기가 위축되면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규모로 풀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각 지자체에서 지방 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쟁적으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최배근 교수는 산업은행이 시장의 부실을 떠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봤다. 최 교수는 "50조 플러스 알파의 안정자금은 결국 산업은행이 회사채를 매입해 주는 형태가 될 텐데, 그러면 회사채 부실이 산업은행으로 이어지고, 산업은행이 부실해지면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돼 있다"면서 "산업은행 부실을 이유로 민영화 논의로 전개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에 발맞춰 금리를 인상해 오던 한국은행도 정책에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최 교수는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해서 금리를 올리고 돈을 회수하던 상황에 오히려 돈을 투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연준은 금리를 2차례 더 올릴 수 있는데 한은은 1번이 남았다. 금리차가 더 벌어진다"면서 환율이 더 상승(원화가치 하락)할 여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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