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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려준 내 전기차 배터리, 충전소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입력
2022.11.23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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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전기차 수요 늘며 폐배터리 발생량도 기하급수적 ↑
폭발·화재 위험에 분리~수거까지 전문 손길 필요
잔존가치 유무 따라 재사용·재제조·재활용 엇갈려
태양광 모아 전기차 충전하는 ESS 개발 사례도
폐배터리 시장 급성장세... 한국서 상용화 아직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 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전기차충전소에서 전기차가 충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전기차충전소에서 전기차가 충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기차 수요가 늘면서 파란색 번호판을 달고 달리는 차들이 많아졌습니다. 콧구멍처럼 생긴 충전단자를 열어 충전하고 있는 전기차의 모습도 어색하지 않아졌죠. 이 전기차를 굴리는 열쇠는 '리튬 이온 배터리'입니다.

이 배터리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에도 사용되는데, 문제는 충·방전을 반복하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래 쓴 휴대폰은 충전 후에도 배터리가 얼마 가지 못해 방전되는데,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기차를 계속 쓰려면 수명을 다한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데요, 이 거대한 배터리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라질까요? 전기차 폐배터리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보겠습니다.

전기차 33만 시대... 폐배터리도 늘어난다

전기차 폐배터리 연간 발생량 예측치단위 : 개
환경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우리나라에 등록된 전기차는 32만8,267대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23만1,443대가 누적 등록된 점을 고려하면, 8개월 동안에만 9만6,824대가 추가 등록된 것입니다. 지난해 1년 동안 신규 등록한 전기차가 10만 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시장 점유율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새 전기차가 늘어난다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에 '폐배터리'가 더 많이 늘어난다는 것과 같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통상 5~10년 정도 운행하면 용량이 70~80% 수준으로 감소해 주행거리가 줄고 충전 속도가 느려져 교체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2010년대 초반부터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만큼 이제 슬슬 폐배터리가 많이 나오기 시작할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경부는 국내 폐배터리 발생량이 2020년 275개에서 △2025년 3만1,700개 △2030년 10만7,500개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민한 폐배터리, 분리 후엔 수거센터에 착착

제주테크노파크 내 배터리산업화센터에 14일 반납된 전기차 폐배터리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온도와 습도 등에 예민해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제주=오지혜 기자

제주테크노파크 내 배터리산업화센터에 14일 반납된 전기차 폐배터리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온도와 습도 등에 예민해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제주=오지혜 기자

교체가 필요한 폐배터리는 함부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폭발·화재의 위험성이 크고, 유독 물질이 밖으로 새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폐차장처럼 전문가가 있는 곳에서 배터리를 분리해야 합니다. 떼어낸 배터리는 언제 허가된 것이냐에 따라 행선지가 달라집니다. 대기환경보전법이 개정됐기 때문인데요, 2021년 이전 등록 차량의 배터리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반납해야 하지만 이후 등록 차량은 이 제한이 사라져 민간에 팔 수도 있습니다. 다만 2021년 이후 등록 차량 배터리는 아직 수명을 다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지자체에 반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자체장에게 반납되는 배터리는 환경부가 운영하는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로 갑니다. 2021년 준공돼 올해 1월부터 정식으로 운영을 시작한 센터는 경기 시흥, 충남 홍성, 전북 정읍, 대구 달서 등 전국에 4곳이 있습니다. 전기차 보급이 상대적으로 일찍 시작된 제주에서는 2017년부터 제주테크노파크가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폐배터리 수거를 맡고 있습니다.

재사용, 재제조, 재활용 무엇이 다를까?

제주테크노파크 내 전기차산업화센터에 전시된 전기차 배터리 구성품들. 왼쪽부터 셀, 모듈 순서. 제주=오지혜 기자

제주테크노파크 내 전기차산업화센터에 전시된 전기차 배터리 구성품들. 왼쪽부터 셀, 모듈 순서. 제주=오지혜 기자

수거장에 들어온 전기차 배터리는 우선 남은 수명이나 용량 등 잔존가치를 평가받습니다. 잔존 수명이 60%에 못 미치면, 재활용(Re-cycle) 대상입니다. 우선 물질 재활용업체가 넘겨받은 폐배터리를 완전히 방전시킨 뒤 파·분쇄합니다. 이때 만들어지는 분쇄물을 '블랙파우더'라고 합니다. 이를 황산에 녹이면 추출 과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유가 금속은 다시 배터리 제조사에 팔려, 배터리를 만드는 데 쓰이게 된다"면서 "추출되고 남은 물질은 폐기물로 버려지는데, 아주 적은 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잔존가치가 있는 폐배터리들은 재사용(Re-use)과 재제조(Re-manufacturing)를 위해 민간 기업이나 지자체 산업화센터에 팔립니다. 재사용은 폐배터리를 팩 그대로의 형태로 쓰는 것으로, 신재생 에너지 연계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나 양식장 무선전원장치(UPS) 등 중대형 ESS가 될 수 있습니다. 재제조는 팩을 분해해 나온 모듈이나 셀을 선별·재조립해 다시 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터리팩은 보통 3~24개 정도의 모듈로 이뤄져 있고, 이 모듈은 8~20개의 셀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경우 가로등, 휠체어 배터리, 가정용 ESS로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제주테크노파크 안에는 폐배터리 모듈을 재제조해 만든 태양광 연계형 전기차 충전용 ESS가 있다. 왼쪽은 태양광을 모을 수 있는 패널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패널에서 모인 전기를 저장해두는 재제조 ESS의 모습. 2일 정도 충전하면 전기차 8대 정도를 충전할 수 있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다. 제주=오지혜 기자

제주테크노파크 안에는 폐배터리 모듈을 재제조해 만든 태양광 연계형 전기차 충전용 ESS가 있다. 왼쪽은 태양광을 모을 수 있는 패널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패널에서 모인 전기를 저장해두는 재제조 ESS의 모습. 2일 정도 충전하면 전기차 8대 정도를 충전할 수 있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다. 제주=오지혜 기자

자체 배터리 산업화센터를 두고 연구 중인 제주테크노파크는 태양광 연계 전기차 충전기용 ESS 실증에 성공했습니다. 모듈을 합쳐 재제조한 ESS에 단지 내 태양광에서 모인 전기에너지를 저장해 차량 충전을 가능하게 한 겁니다. 이 ESS 안에는 모듈이 200개 정도 들어있습니다. 김형진 에너지융합센터 성능평가팀장은 "용량이 200킬로와트시(kWh) 정도로, 20kWh 태양광 패널을 사용하면 10시간 정도 충전이 필요하다"면서 "전기차 8대 정도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폐배터리 시장 커지는데... 아직 상용화는 먼 길

제주테크노파크 내 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14일 폐배터리 성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제주=오지혜 기자

제주테크노파크 내 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14일 폐배터리 성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제주=오지혜 기자

하지만 아직 일상에서 폐배터리를 재사용·재제조한 결과물을 볼 순 없습니다. 연구가 본격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폐배터리 재사용을 위한 안정성 검사 제도의 법적 근거를 담은 전기생활용품안전법이 내년 10월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이 법이 시행되고 인증제도가 갖춰지면 상용화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 규모가 2025년 3조 원에서 2050년 600조 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쓰레기였던 전기차 폐배터리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해 나갈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제주=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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