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수사의 역사

입력
2022.10.23 18:00
수정
2022.10.23 23: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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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사탕 한 개도 받은 적 없다"고 의혹을 부인하며 특검을 제안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사탕 한 개도 받은 적 없다"고 의혹을 부인하며 특검을 제안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불법 대선자금이 본격적으로 수사된 것은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었다. 이회창 캠프가 현금 실은 트럭을 통째로 넘겨받는 후안무치한 방식으로 대기업들로부터 800억여 원을 받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이었던 서정우 변호사 등 정치인 32명과 기업인 2명이 사법처리됐다. 하지만 “대선자금에 관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고 제가 감옥에 가겠다”고 했던 이 전 총재 본인은 기소도 되지 않았다.

□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도중 1992년 대선자금을 포함한 비자금 의혹으로 수사받을 위기에 처했다. 앞서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선자금 ‘20억 원+알파’를 받았다고 실토한 바 있었는데, 그 외에 기업에서 받은 134억 원등 총 67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이회창 캠프가 폭로했다. 하지만 선거가 불과 두 달 남은 시점에서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은 검찰에 수사 유보를 지시했다. DJ는 당선됐고 검찰은 1998년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 YS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1992년 대선 때 YS 측에 3,000억 원을 건넸다고 했다. 노무현 캠프는 100억여 원을 불법적으로 받은 게 차떼기 수사 중 드러나 관련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YS가 “대통령 재임 중 1원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법 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 사퇴하겠다”고 큰소리친 일이 무색하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다.

□ 결국 지금껏 불법 대선자금으로 후보가 처벌된 경우는 없었는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첫 사례가 되는 게 아닌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차떼기 등에 비하면 ‘소박한’, 최측근의 8억여 원 수수가 그를 위협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가 투명해지고 정치자금 기준이 엄격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검찰이 정치를 흔드는 위력은 너무 커졌다. 청렴하지만 사법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의 균형이 절실하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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