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막혀 사업 중단 현장 속출"... 건설업계 위기 최고조

입력
2022.10.23 17:36
수정
2022.10.23 22: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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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PF 보증 3년 새 50% 급증
악재 맞물려 'PF 차환 리스크' 확산
시행사·중견건설사 자금줄 막혀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이 크게 꺾이고,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업계가 초비상이다. 2, 3년 동안 부동산 호황에 기대 아파트 수주를 늘리면서 남발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서가 시장 침체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PF 보증 여파로 40여 곳의 건설사가 일제히 문을 닫은 줄도산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3년 새 건설사 PF 보증 50% 급증

미분양 가구가 많은 대구 북구 칠성동의 한 아파트에 불이 띄엄띄엄 켜져 있다. 대구=최주연 기자

미분양 가구가 많은 대구 북구 칠성동의 한 아파트에 불이 띄엄띄엄 켜져 있다. 대구=최주연 기자

23일 한국신용평가(KIS)에 따르면, 올 6월 말 KIS 투자등급을 보유한 국내 건설사 20곳의 PF 보증 규모는 18조 원으로 2018년 말(12조 원)보다 50% 급증했다. 건설사의 PF 보증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9년 25조 원으로 정점을 찍고 줄곧 내려오다 2020년 이후 주택시장 호황기와 함께 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건설시장에선 시행과 시공을 분리하는 사업구조가 굳어졌다. 토지 확보와 번거로운 각종 인허가는 전문 시행사가 담당하고, 건설사는 공사비를 받고 건물만 짓는 식이다.

하지만 건설사에 견줘 자금력이 크게 떨어지는 시행사가 어떻게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걸까. 바로 부동산 PF를 통해서다. 아파트·주상복합 등을 짓고 미래에 들어올 분양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사업비를 빌리는 금융기법이다. 다만 대출을 받는 주체는 시행사지만, 건설사도 리스크를 어느 정도 떠안는다. 금융사가 건설사에 일종의 연대보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건설사 신용보강이라고 하는데, 연대보증, 채무 인수, 책임분양처럼 형태는 다양하다. 분양에 실패해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건설사가 대신 빚을 떠안거나, 공사비를 설령 못 받아도 건물을 100% 완공하겠다는 약속이다. 최근 건설사 PF 보증 규모가 급증한 건 건설사들이 분양시장 호황기에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앞다퉈 아파트 수주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경기 꺾였다…부동산 PF 폭탄 터질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규모

부동산 PF는 주택 경기가 호황일 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거나 금융시장 경색이 발생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최근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PF 차환 발행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다.

둔촌주공 조합은 PF 대출채권 자산을 기초로 기업어음(ABSTB)을 발행했고, 이달 28일이 만기다. 통상의 경우라면 둔촌주공 사업성을 고려할 때 새로 어음을 발행해 기존 어음을 상환하는 차환 발행에 전혀 문제될 게 없지만, 예상과 달리 투자자를 모으지 못했다.

최근 분양 경기가 꺼지고, 강원도 레고랜드발(發) 자금 경색 영향으로 'PF 차환 리스크'가 본격화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결국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인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자체 자금으로 사업비 7,000억 원을 상환할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대형사 가운데 롯데건설이 PF 리스크에 가장 취약하다. 이 회사가 끊어준 PF 보증 규모는 6조7,00억 원에 이르고 이 중 올해 말까지 꺼야 할 급한 불만 3조 원에 이른다.

앞으로 PF 악재에 시달리는 건설사가 잇따를 거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기준 건설사가 PF 보증을 해준 사업장의 58%는 미착공 사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분양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꺾이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큰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본PF 못 받아 공매 넘어가는 사업장도 잇따라

8월 말 기준 미분양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8월 말 기준 미분양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자금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와 달리 시행사와 중견 건설사들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이미 미분양이 속출하는 대구에선 시행사가 초기 대출(브릿지론)을 받아 땅을 확보하고 인허가까지 받았지만, 금융기관에서 그다음 사업 단계를 위한 본PF대출이 막혀 해당 사업장이 아예 공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수도권에서도 PF 대출이 막혀 사업이 중단된 현장이 속출하고 있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일부 시행사는 대부업체에 손을 벌릴 정도"라며 "시행사가 무너지면 결국 보증을 선 건설사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7월까지 문을 닫은 건설사는 7곳에 이른다.

지금의 위기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 중견 건설사도 잊을 만하면 도산했는데 이런 일부 사례를 건설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건 주의해야 한다"며 "산업 전반의 붕괴를 운운하는 건 너무 앞서나간 얘기"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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