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에 없는 것

입력
2022.10.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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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전경. 연합뉴스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전경. 연합뉴스

정책 소개·분석 기사는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인기가 없다. 거의 매일 충격적인 사건과 수사, 3류 드라마 같은 정치 싸움이 벌어지니, 웬만한 정책 기사는 눈길을 잡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새 정권 초기의 언론 분위기를 그나마 좋아했다. 지지하는 방향과 같건 반대이건, 어쨌건 정권 초기는 새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정책’과 ‘비전’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는 드문 시기고 언론에서도 정책 기사를 가장 많이 쓰는 때이다. 서로 죽일 듯이 싸워도 그 주제가 ‘정책’이라면, 거기서 파생된 갈등은 생산적이라 믿는다.

문재인 정권 초기를 돌아보자. 남북정상회담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굵직한 정책 추진이 연일 조명을 받았다. 지금에 와서 용두사미이거나 부작용 혹은 허탈함이 남는 정책이 있다고 해도, 당시의 기대와 변화에 대한 열망은 명확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언론사들은 정책 파헤치기나 분석이 아니라 야권에 대한 전방위 검찰 수사, 대통령실 이전 논쟁,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색깔론 발언과 비속어 논란 같은 혼탁한 기사들을 뱉어내는 상황에 놓였다. 더 자극성 높은 소재를 좇는 언론의 속성도 있지만, 윤 정권이 떠민 측면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정권의 고위 관료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정점으로 향하는 걸 지켜보며, 문득 지난 대선은 정책이 아니라 수사 대상을 고르는 투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정권 수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수사’를 할 것인가. 둘 다 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에서, 검찰은 절대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하지만, 수사도 하는 것과 수사만(그것도 특정 세력에 대해서만) 하는 것은 ‘흑(黑)과 백(白)’만큼이나 다르다.

물론 주목이 적어도 윤석열 정권에서도 이런저런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는 반론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통찰력을 담은 정책들이 아니라, 전 정권의 정책(중대재해처벌법과 주 52시간 근무, 재생에너지 목표 등)을 손보거나 후퇴시키려 한다는 논란을 부르는 것들 위주다. 윤 정권 들어 가장 ‘핫’했던 정책이 최악의 지지율 추락을 불러 급히 폐기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이었던 건, 상징적이다. 우습게도 차라리 그 ‘정책 논쟁’이 그립다.

경제 위기와 양극화는 깊어 가는데 수사만 몰아치고 기대를 가질 만한 정책이 없으니, 정권 초기인데도 사회 분위기는 마치 정권 말기와 같다. 예상은 가능했다. 국민들이 정책을 기대해서 윤 대통령을 고른 건 아니다. 그저 그 상대 세력이 싫었던 것뿐.

심지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같은 아마추어적인 정책 추진을 할 거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이게 한 국가의 행정부에 대한 기대치로 적정한가.

윤 대통령은 야권 수사에 대해 “검찰 수사내용을 챙길 만큼 한가하지 않다, 언론보도 보고 알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수사 지휘를 하고 있지 않다면, 뭘 하느라 바쁜 지 국민들이 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윤 대통령에 대한 20%대 지지율의 핵심이다.

이진희 어젠다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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