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도쿄 랜드마크에서 100명이 난투극...‘차이니스 드래건’의 정체는?[특파원24시]

입력
2022.10.23 15:00
수정
2022.10.23 17:17
16면
구독

주말 초고층빌딩 식당서 난투극
중국 잔류 일본인 2, 3세 폭주족이 원류
차별이 폭력 조직 씨앗 만들어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랜드마크 빌딩 '선샤인 60' 전경. 한국의 63빌딩이 생기기 전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으며, 60층에 있는 전망대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생기기 전까지 도쿄도에서 가장 높았다. 위키피디아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랜드마크 빌딩 '선샤인 60' 전경. 한국의 63빌딩이 생기기 전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으며, 60층에 있는 전망대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생기기 전까지 도쿄도에서 가장 높았다. 위키피디아

지난 16일 오후 6시 반,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초고층빌딩 ‘선샤인 60’의 58층 식당에서 “손님들이 싸우며 날뛰고 있다”는 긴급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이 달려갔을 때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20대 남성 몇 명이 현장에 있을 뿐이고, 참석자 대부분은 사라지고 없었다. 식당 안은 난장판이었다. 깨진 접시와 유리잔, 맥주병과 음식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테이블은 뒤집히고 문도 부서진 채였다.

가족 방문객도 많은 랜드마크 빌딩 식당에서 폭력 집단의 패싸움이 발생한 사실은 도쿄 시민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날 식당을 빌린 단체는 ‘차이니스 드래건’이란 이름의 준폭력단. 멤버 100여 명은 이날 저녁 지난 8월 복역을 마친 전 리더의 출소 축하 행사를 하기 위해 이 식당을 통째로 빌렸다. 하지만 다른 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남자 10여 명이 곧 식당에 뛰어들며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준폭력단이란 흔히 ‘야쿠자’라 불리며 폭력단대책법의 적용을 받는 지정폭력단과 달리 멤버가 유동적이고 확실한 조직 체계가 없다. 그러나 번화가에서 집단적, 상습적으로 폭행이나 특수 사기, 조직 절도 등 불법 활동을 하기 때문에 시민에게 위협이 되는 집단이란 점은 마찬가지다.

중국 재류 일본인 2, 3세가 1988년 결성한 폭주족 '드래건'의 창설 당시 멤버인 왕난의 저서 '드래건과 나'의 표지. 차별과 괴롭힘 등이 폭주족 단체를 결성한 원인이었다는 점과 이후 장기 복역 후 제2의 삶을 살게 된 과정 등을 기록했다.

중국 재류 일본인 2, 3세가 1988년 결성한 폭주족 '드래건'의 창설 당시 멤버인 왕난의 저서 '드래건과 나'의 표지. 차별과 괴롭힘 등이 폭주족 단체를 결성한 원인이었다는 점과 이후 장기 복역 후 제2의 삶을 살게 된 과정 등을 기록했다.

차이니스 드래건의 원류는 1988년에 중국 잔류 일본인 2, 3세 등이 결성한 폭주족 ‘드래건’이다. 한자로는 ‘怒羅權’이라고 쓰고, 용, 즉 중국을 의미하는 ‘도라곤(드래건의 일본어 발음)’으로 발음한다. ‘노(怒)’는 자신들을 차별한 일본인에 대한 분노를, ‘라(羅)’는 강적을 쓰러뜨리는 나한(불교 용어)을, ‘권(權)’은 자신들의 권리를 각각 뜻한다.

중국 잔류 일본인이란 태평양전쟁 후 중국에 남겨진 일본인 아이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전쟁 당시 국가 정책에 의해 만주로 건너갔지만 전후 귀국하지 못해 중국인 양부모에게 자랐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다가 중일 국교 정상화가 된 1972년 이후 서서히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중국어만 할 수 있는 데다 일본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이들은 고국에서조차 차별받았다. 차별과 언어 문제로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질 수 없어 극도로 빈곤했다.

폭주족 ‘드래건’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대를 이어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던 2, 3세 12명이 결성했다. 이들은 여러 일본인 폭주족과 싸워 이기며 폭주족 단체를 제패해 나갔다. 차이니스 드래건은 이들 중 일부가 폭주족을 그만둔 뒤 1990년대 일본에 흘러들어 온 밀입국자나 불법 체류자 등을 더 받아들이며 폭력단 비슷한 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간 단체다. 잔류 일본인 2, 3세들은 일본어와 중국어에 모두 능통해 중국에서 온 밀입국자를 모으기 유리했다.

차이니스 드래건이 비교적 큰 세력으로 성장하자 여러 폭력 그룹이 너도나도 ‘드래건’을 칭하기 시작, 현재 일본 경찰도 드래건 또는 차이니스 드래건의 전체상을 파악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분슌은 전했다. 고국에 의해 버려진 일본인을 따뜻하게 맞이하기는커녕 오히려 차별한 것이 거대한 폭력의 씨앗을 만든 셈이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