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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어야만 힘이 날까?

입력
2022.10.23 08:00
수정
2022.10.23 14:0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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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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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과 골다공증 등으로 진료받으러 온 80대 여성 A씨. 그는 “제대로 먹지 못해서 힘이 없어서 링거를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혈액ㆍ소변검사 결과는 A씨의 말과는 달랐다. 그의 하루 단백질 섭취량은 90g으로 확인됐다.

2020년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에 따르면 75세 이상 여성의 하루 단백질 섭취 권고량은 50g이다. A씨는 단백질을 권고량의 1.8배나 더 먹고 있으면서도 “많이 안 먹어서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고기를 더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힘을 쓰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를 앓아 몸이 허해졌으니 고기를 먹어야겠다’라거나 ‘수술 후에는 고기나 생선회를 먹으면 빨리 회복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기, 특히 육류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1년 내내 고기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오랜 세월 동안 쌓였던 결핍에 대한 보상 심리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그 사례 중의 하나가 여름 삼복 더위 때 삼계탕을 찾는 음식 문화일 것이다.

문제는 육류 섭취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요즘도 고기에 대한 집착이 지나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올해 한국인 1인당 육류 섭취량 예상량은 56.5㎏으로 쌀 소비 예상량(54.1㎏)을 넘어설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쌀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운을 차리려면 고기를 더 먹어야 한다’라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 생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개인적인 편차는 있겠지만, 진료실에서 혈액ㆍ소변검사를 해보면 단백질을 과하게 섭취하는 사례는 무척 흔하다.

동물성 단백질 과잉 섭취가 비만ㆍ당뇨병ㆍ뇌졸중ㆍ심근경색ㆍ암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증명돼 있다. 특히 콩팥의 사구체 혈관이 손상돼 단백뇨가 발생하는 만성콩팥병 환자들은 단백질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그런데도 단백질을 과잉 섭취하면 콩팥 손상이 가속화된다.

적정 단백질 섭취 기준은 과거에는 체중 ㎏당 1g으로 돼 있었으나, 최근에는 0.8g으로 줄었다. 체중 70㎏인 사람은 하루 70g까지 섭취토록 했으나, 이를 56g으로 줄이는 게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또한 육류를 통한 단백질의 비중은 줄이는 대신 생선ㆍ달걀ㆍ콩ㆍ우유ㆍ유제품ㆍ견과류 등을 통한 단백질 섭취 비중을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식품별 단백질 함량을 보면 밥 한 공기 5~6g, 달걀 한 개 6g, 작은 우유 한 팩 6g 등이다.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달걀 한 개와 우유 한 팩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하루 단백질 권장량의 절반 가까이 먹는 셈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배불리 먹으면 하루 단백질 섭취량이 90~100g을 훌쩍 넘는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근육이 생겨서 힘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근육 형성에 영향을 주는 3대 요소인 단백질 섭취, 운동, 호르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운동하지 않으면서 과잉 섭취하는 단백질은 비만과 콩팥 손상을 부를 수 있다.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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