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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세상의 색깔

입력
2022.10.22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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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음악이 흥겹게 흐른다. 누군가 명랑한 목소리로 상품을 안내하고, 판매 시간이 끝나감을 알리는 시계소리가 째깍째깍 들린다. 그렇다. 여기는 텔레비전 채널 안, 홈쇼핑 세상이다. 친절하게 파는 옷과 가방은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를 것 없는데, 유독 색깔을 이르는 말투가 많이 낯설다. '새틴블랙', '에토프', '틸그린'… 듣고 있지만 아는 말이 없다. 그나마 그 뜻이 조금 추측되는 말이 '와인컬러', 그리고 '버터아이보리' 정도이다. 외국어인 핑크나 그레이로는 부족한지, 뒤를 이어 '비엔나핑크, 민트그레이' 등이 일렬로 늘어선다.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은 색이 있다. 그 색을 말하는 까망, 하양, 노랑, 파랑, 빨강은 우리 고유어이다. 그러한 만큼 적어도 이 오방색에 대해서는 명도와 채도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 우리말의 새파랗다, 시퍼렇다, 푸르스름하다, 푸르댕댕하다, 푸르죽죽하다 등을 외국어로 다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예이다.

이 색들을 처음 표현하려던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기 시작했을까?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대상에 빗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곰의 색, 대낮에 뜬 해의 색, 풀의 색, 불의 색과 같이 말하는 방법이다. 늘 먹던 비빔밥에, 고개 들면 하늘 아래 펼쳐진 처마에, 그리고 조각보에 펼쳐져 있는 이 색들은 한국 생활 곳곳에 있는 것이므로 소통하기에 잘 맞았을 것이다.

이 세상의 색은 '진짜 세상'의 이모저모를 투영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 하늘의 색이면 하늘색이고, 나무의 색이면 나무색이다. 청포도색, 겨자색, 개나리색 등도 그렇게 나온 말이다. 그중에서도 콩의 모양인데 팥의 색이라 붙여졌다는 콩팥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온갖 색을 적고자 한 우리말 색이름 사전도 있다. 아무 뜻 없이 느낌으로 유혹하지 않고 실제로 있는 말을 살려 뜻을 전하고자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홈쇼핑의 세상에서는 굳이 색다르게 표현해야 물건이 잘 팔릴까? 만약 그렇게 보고 있다면, 그것은 판매자가 소비자의 인지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은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어려운 말이 '있어 보이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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