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교회로 뛰어든 '멧돼지'

입력
2022.10.21 18:00
22면
구독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등에 따르면, 13일 오후 4시 40분경 창덕궁 후원에 있는 선원전 권역에서 멧돼지 1마리가 목격됐다. 사진은 신고받고 출동한 소방당국. 연합뉴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등에 따르면, 13일 오후 4시 40분경 창덕궁 후원에 있는 선원전 권역에서 멧돼지 1마리가 목격됐다. 사진은 신고받고 출동한 소방당국. 연합뉴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위기에 종교 위기가 빠지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베이비 붐 세대로 성장가도를 달려온 종교들은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종교인구 감소로 대형 교회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유명 신학대의 입시 미달 사태는 새로운 일도 아니다. 국내 신학대들도 정원감축, 경쟁률 비공개로 대응하는 실정이다. 코로나19가 문제를 가중시킨 것은 물론인데 기성 목회자들의 번아웃(탈진)마저 심상치 않다고 한다.

□ 탈진으로 전례 없는 숫자의 목회자들이 사역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미국 폭스뉴스가 최근 전했다. 종교연구기관 바르나그룹에 따르면, 목회자 5명 중 2명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스트레스(56%) 외로움(43%) 정치적 분열(38%) 그리고 가족 문제(29%) 등의 순이었다. 폭스뉴스와 인터뷰한 성직자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심각한 탈진을 토로했다. 마스크 착용을 비롯한 새로운 갈등, 성직자를 영적 지도자가 아닌 조직의 최고경영자(CEO)로 보는 경향, 교인들의 과도한 사적 기대 등이 고충을 가중시킨다고 했다.

□ 이런 실정이 국내라고 다르지 않지만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영화 ‘수리남’에서 마약 왕국을 꿈꾼 전요한(황정민 분)의 직업은 목사다. 성찬에서 교인들에게 마약을 탄 음료수를 마시도록 하며 교회를 자신을 위한 왕국으로 만들어 간다. 이 같은 설정을 놓고 한 목사는 절대적인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목사 직을 차용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현실을 자탄했다. 마약과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목사를 설정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현실이 종교 위기를 상징한다는 얘기다.

□ 교황청이 성베드로대성당 증축을 위해 면죄부를 팔자 시골의 이름 없는 사제이던 마르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였다. 이에 교황 레오10세는 루터를 “주님의 포도밭에 뛰어든 멧돼지”라며 파문에 나섰다. 그러나 신성을 내세운 철옹성 교회에 항거한 '멧돼지' 덕분에 종교는 개혁을 이루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다. 500년 전의 저 멧돼지가 다시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창경궁에 멧돼지가 출현해 소방대원과 엽사들이 수색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든 생각이다.

이태규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