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월급 구경 못해요" 이자 공포에 집도, 주식도 던진다

입력
2022.10.25 04:30
수정
2022.10.25 11:25
1면
구독

<1> 고금리 비명
빚 끌어다 아파트, 주식, 코인 산 영끌족
고공 비행 금리, 본격 하락장에 생활 막막
하락이 하락 부르는 패닉 장세 될라 불안

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시중 은행 지점 입구에 붙은 신용대출 안내 문구. 연합뉴스

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시중 은행 지점 입구에 붙은 신용대출 안내 문구. 연합뉴스

직장인 이모(36)씨 부부는 지난해 8월 원래 살던 아파트를 팔고 서울 마포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12억5,000만 원에 샀다. 그런데 최근 그 집을 12억 원에 다시 내놨다. 지난해 3.8%의 이자로 받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3억 원을 포함해, 신용대출, 사내 대출, 양가 부모에게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까지. 매달 갚는 원리금이 두 사람 월급의 70%가량인 400만 원을 넘기면서다.

내년에 주담대 원금 상환까지 시작되면 이씨 부부의 매달 생활비는 50만 원도 안 된다. 이씨는 "벌써부터 생활비가 쪼들리니 더 늦기 전에 집을 파는 게 나을 것 같다"며 "근처 신축 아파트 매물이 늘고 있어 호가를 더 낮춰야 하나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낸)족'이 벼랑 끝에 섰다. 과거 저금리를 실탄 삼아 '패닉바잉(묻지마 매수)' 행렬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이라도 부동산, 주식, 코인 등 가진 자산을 던져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금리는 앞으로 더 오른다는데, 하락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공포감 때문이다.

'부동산은 우상향'이란 말만 믿기엔 당장 월급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이자가 더 무섭다. 자산시장을 전방위로 덮친 고금리 폭탄은 뒤늦게 영끌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턱밑 이자에... 산 지 1년도 안 된 집 되팔기도

이씨 부부처럼 기존 집을 처분해 일찌감치 양도차익이라도 본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무주택 공포'에 사로잡혀 말 그대로 끌어올 수 있는 돈은 다 끌어와 영끌 매수에 나섰던 사람들은 턱밑까지 꽉 찬 대출이자를 무작정 떠안고 갈 엄두가 안 난다.

주담대 금리가 두 배로 뛴 2년 사이 월 이자만 100만 원가량 늘었다는 자영업자 박모(37)씨도 최근 집을 내놓기로 했다. 박씨는 "가게 때문에 받은 사업자 대출까지 있어 이자 감당이 안 된다"며 "먹고는 살아야 하니 가게를 접을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유모(35)씨는 "그나마 주담대는 3%대 중반 고정금리(5년)지만 금리가 5%대 후반으로 뛴 신용대출이 진짜 문제"라며 "이자가 저렴한 회사(사내)대출로 신용대출을 갚을까 했지만 이마저도 소진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를 산 지 얼마 안 돼 처분하는 비율이 최근에 확 늘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1~9월 전국에서 아파트를 매도한 37만9,527명 중 1년 이하 보유한 아파트를 되판 집주인은 전체의 8.6%(3만2,721명)였다. 집값이 많이 뛴 만큼 하락세도 유독 가파른 인천은 이 비율이 16.6%였는데,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았다.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애초 이자를 감당할 만한 소득 수준이 아닌 사람이 대출을 많이 받은 게 문제"라며 "변동금리 비중도 워낙 높아 이들의 투매 현상도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8월 기준 은행권 변동금리 비중(잔액 기준)은 80%에 이른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마통 5000만 원, 주식에 올인했는데..."

빚을 내 주식에 뛰어들었던 개미(개인투자자)들도 증시 초토화로 최악의 상황에 내몰려 있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증시 활황에 수익률 100% 이상을 경험한 것도 잠시, 이제는 대부분의 종목이 두 자릿수 낙폭을 기록 중이다. 마이너스통장(마통)을 포함한 신용대출 금리가 수직 점프한 탓에 눈물의 손절매에 나선 투자자가 적지 않다. 현재 은행권 신용대출 상단 금리는 연 7%를 뚫은 상태다.

이모(44)씨도 최근 마이너스(-)20%가 찍힌 삼성전자 주식 일부를 매도했다. 그는 "작년 5,000만 원짜리 마통에 아이 돌반지까지 팔아 삼전에 올인했다"며 "내 돈이면 끝까지 버텨 봤겠지만, 마통 금리가 7%를 향해 가니 더 최악으로 가기 전에 건져야 한다는 생각만 들더라"고 말했다.

증권사에서 빚을 내 주식을 산 투자자도 이자 부담에 몰려 발을 빼고 있다. 증권사가 고객 주식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은 현재 10%대에 달한다. 담보로 맡긴 주식 가격이 떨어지면 증권사는 이를 강제 처분(반대매매)할 수도 있다. 투자자로선 대출금은 물론 투자 원금까지 날릴 가능성이 높고,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아치우는 반대매매로 하락이 하락을 부를 경우 증시는 재차 패닉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은행 예금 금리까지 하루가 다르게 오르면서 아예 주식을 등진 뭉칫돈도 적지 않다. 증권시장 대기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은 올초 71조 원에서 이달 48조 원으로 23조 원이나 줄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속도를 보면 우리 대출금리도 내년 최고 10%까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상환 능력에 따라 대출금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고 1저' 지뢰밭 위 한국경제] 글 싣는 순서


<1> 고금리 비명

<2> 고환율 비상

<3> 고물가 신음

<4> 저성장 수렁

<5> 복합위기 진단


조아름 기자
윤주영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