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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 홀로 키우는 엄마, 교통사고 나도 아이 맡길 곳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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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071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광역지자체별 발달장애 인프라의 실태를 분석해 인터랙티브와 12건의 기사로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설문 응답자들의 개별 인터뷰를 매주 토, 일 게재합니다. 생생하고, 아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강원 원주에서 12살 딸과 8살 아들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장예원(가명·40)씨.
그는 지난 9월 중순, 지역 발달장애인 통합지원센터의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을 마쳤을 아들을 데리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퇴근 시간 무렵 딸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기사가 실수로 인도를 들이받은 것. 아들을 대신 데리러 가줄 사람도 없어서, 예원씨는 급한 대로 그 택시를 그대로 타고 센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이튿날부터 예원씨의 어깨와 허리, 몸 곳곳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부터 20여 년간 아버지 병간호에, 꽃다운 20대 시절엔 장애인 시설에서 돌봄 노동을 하며 몸이 많이 상했던 그였다. 뒤늦게 병원에 가니 뼈가 이미 약해졌던 터라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딸도 입원해야 한댔다.
그러나 그동안 자폐를 가진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여러 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코로나 탓에 ‘동반 입원’도 어렵다는 답변뿐이었다. 아들 종윤(가명)이는 지적장애와 자폐로 3세 수준의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데, 발달장애아 특성을 이해하고 돌봐줄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처럼 혼자서 양육하는 사람은 진짜... 이런 상황 생기면 막막하죠. 가족이나 친한 지인이 있으면 도움을 받겠지만, 전 지금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도움을 청할 가족도 없고, 주변에 아는 분들도 다른 (장애) 아동 부모님 정도니까...” 예원씨의 말이다.
막막한 심정에 그는 주민센터를 찾았다. 별다른 도움은 못 얻고, 시청에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가족관계를 조회한 듯한 시청 공무원의 첫마디는 이랬다고 한다. '왜 외할머니(친정 엄마)에게 맡기시지 않고요?'
예원씨는 기가 찬 듯 말했다. "아니,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할머니가 여기(원주)에 계시고, 일도 안 하시면 제가 벌써 부탁해서 딸이랑 입원했겠지, 왜 여기까지 와서 선생님들께 얘기하겠냐고.” 전남편의 가정폭력 가해로부터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타지로 떠나온 예원씨에겐 공공기관 외엔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고령의 모친은 다른 지역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상황이라 부담을 줄 수도 없었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겠냐고 간청하는 그에게 시청은 지역 내 ‘장애인 단기보호소’ 한 곳을 소개해 줬다고 한다.
장애인 단기거주시설은 장애인에게 주거와 일상생활을 제공하는 한편, 그동안 주보호자는 휴식을 취하거나 질병·경조사·해외 출장 등 개인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단기 돌봄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보통 1회에 한 달 정도 이용 가능한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57개 시설에 1,700여 명이 지내고 있는 걸로 집계됐다.
그러나 딸의 손을 잡고 시설을 방문한 예원씨는 고개를 저으며 그대로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설 환경은 열악하고, 거주자도 고등학생 한 명을 빼고는 전부 성인이었다.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장애 유형 역시 주로 휠체어를 타는 뇌병변·지체장애인이었다. 특히 종윤군에겐 중증 천식이 있어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 처지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의료 전문 인력도 없었다. 도무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같이 간 딸이 그러더라고요. 시설을 보더니 ‘엄마,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장애 아동을 위한 (단기 보호) 시설은 아예 원주에는 없대요."
다른 방법은 타 지역 장애 아동 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기는 것이었다. “매뉴얼대로 하면 가능은 하겠죠. 근데 지원금을 받으려면 아들 주소를 그쪽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시설에서 돌아온 뒤 아이가 다닐 학교도 처음부터 다시 알아보고, 특수교육 대상자 등록도 처음부터 다 해야 된다는데 어쩌겠어요..."
결국 자포자기한 예원씨는 직접 아이를 돌보면서, 아픈 몸을 이끌고 통원 치료를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의 설문조사와 인터뷰 과정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강력하게 요청한 것 중 하나는 '긴급돌봄 시설을 마련해달라'는 것이었다. 보호자가 병으로 아프거나 가정 내 대소사가 생겼을 때 '독박 돌봄'의 부담에서 벗어나, 1~2주 정도 발달장애인이 지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할 때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울산) 저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공황장애가 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발작이 올 때면 병원에 가야 하기도 하는데, 단기보호시설이나 24시간 돌봄 시설이 없다 보니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병원에) 가야 할 때면 너무 걱정이 됩니다. 긴급 돌봄 시설이 제발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경남) 성인기 중증 장애인 부모입니다. 자녀가 주간보호소에 다니는데 가족 대소사나 몸이 아플 때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는, 단기 보호소나 24시간 돌봄 서비스가 절실합니다. 중증 장애인이다 보니 부부가 전담해 돌봄을 합니다. 항상 아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니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는 실정입니다. 독립을 시킬 수준이 안 되다 보니, 부모가 늙어가는 것이 두렵고 서글픕니다.
정부에서도 이 같은 필요성을 인식해, 내년 4월부터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입원과 경조사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시 돌봄을 제공하는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국 17개 시도에 40개소를 설치할 계획이며, 현재 연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발달장애에 더해 중증 기저질환을 가진 아이에게는 더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종윤군도 중증 천식을 앓다 보니, 증상이 올라오면 즉각 스프레이형 치료제를 대신 투여해 줄 어른이 필요하다. 한 번은 스프레이를 뿌려도 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아이가 졸도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이것이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간주돼, 아무나 도와줄 수 없다는 점이다.
"저희 애가 일반학교 도움반을 다니는데, 입학 전부터 시(市)랑 학교에 많이 얘기를 하고 방문 면담도 했어요. 다행히 학교랑은 얘기가 돼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가진 보건실 선생님에게 아예 약을 가져다드리고, 아이가 숨쉬기 힘들어하면 곧바로 처치해 주시기로 해둔 상황이죠. 근데 활동보조 선생님은 이걸 해주면 의료법 위반으로 걸린다는 거예요.”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식사 도움, 청소, 이동지원, 등하교 보조, 의사소통 등 일상을 모두 함께한다. 종윤군의 사례처럼 장애인 당사자가 기저질환을 갖고 있거나, 위루관(뱃줄)을 사용하거나, 석션이 필요한 중증장애인 등의 경우엔 활동지원사에게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의료행위가 요구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이 같은 조치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현장의 보호자와 활동지원사, 교사 등은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제가 당장 아들에게 처치해 줄 수가 없는 상황이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거잖아요. 활보쌤(활동지원사)이 그걸 못해주시면 아이를 그냥 두라는 건지... '그럼 호흡 곤란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제가 기관에 물으니, 활보쌤이 차에 태워서 의식 없는 채로 그냥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한대요. '그러면 애 죽으라는 건가요?' 제가 이랬죠.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정말 대한민국 법이 개떡 같아요.” 한숨을 쏟아내며 예원씨는 말했다.
'장애가 중증일수록 갈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중증일수록 이용할 프로그램이 없다. 중증일수록 활동지원사 연결이 어렵다. 중증이라 복지관 이용을 거절당했다. 중증이면 더 소외된다. 중증이라, 중증이라...'
1,071명 발달장애인 가족과의 설문조사 및 인터뷰를 진행하며, 줄곧 기자들이 들었던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장애 정도가 심하거나, 장애와 질병을 함께 가진 당사자에겐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중증장애인에 대한 교육, 재활치료, 돌봄에는 더 많은 노동력과 전문성이 필요함에도, 서비스 공급자에게 그만큼의 추가적인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기저질환을 가진 종윤군 역시 다닐 어린이집을 찾고, 현재의 활동지원사를 만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저희가 원래 가정폭력 쉼터에 있다가, 이사를 하면서 아들 다닐 어린이집을 새로 찾아야 했어요. 여러 군데 연락을 했지만, 천식 때문에 다 거절당했죠. (처치) 해줬다가 문제가 되면 책임지는 게 무서울 테니까요. 별수 없이 제가 1년 반 동안 혼자 돌봤는데, 애가 완전히 제 껌딱지가 돼서 사회적 상호작용도 안 되고 저도 너무 힘들어지고 그랬죠..."
견디다 못한 예원씨가 갈급한 마음으로, 마지막에 연락했던 어린이집에서도 원래 입소를 거절당했었다.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원장님, 여기에서도 안 받아주시면 저 진짜 시위하러 가야 된다고. 아이가 천식 때문에 배울 것도 못 배우고 있는데 인권침해 아니냐'고요… 제가 천식이 있어서 아들도 (천식이) 있는 건데, 건강하지 못한 부모 만나 아이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예원씨는 애꿎은 자신을 탓했다.
다행히 어린이집에서 그의 사정을 헤아려 아들을 받아줬다. 다만 천식 탓에 종윤군이 참여하기 어려운 운동이나 등산 등 외부활동을 할 때면 엄마가 '가정 돌봄'을 하는 날도 적잖았다고 한다.
활동지원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힘겨웠다. 예전에는 등하원 길을 모두 예원씨가 함께했지만, 모자 모두 천식이 있다 보니 그 시간이 점점 버거워졌다.
"아들이랑 저랑 둘 다 천식이 있으니, 걸을 때도 천천히 가야 하고요. 아이를 안고, 업고 계속 하다보니까 저도 힘들더라고요. 결국엔 활동지원을 이용해야겠다, 했죠. 그것도 되게, 되게 어렵게 선생님을 만난 거예요. 다섯 군데 기관에 다 대기를 걸어놨는데, 어떤 데는 순번이 오십몇 번이고... 아들의 천식 때문에 이용을 거절당하기도 했고요. 올해 3월부터 걸어놔서 6월부터 쓰기 시작했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예원씨는 답했다. "기관도, 제도도 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죠. 너무 억울해서... 마음 같아서는 로또라도 되면, 뜻이 맞는 어머니들이랑 함께 (발달장애인) 기관을 차리고 싶어요."
①혼자 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보호자는 사고와 질병 등 긴급상황이 생겼을 때 아이를 마음 편하게 맡길 곳이 없다. 급할 때 공공에서 돌봄 지원을 해주시면 좋겠다.
②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활동 기관이 너무 부족하다. 중증이거나 기저질환이 있으면 이용은 더더욱 어렵다. 부모는 로또라도 맞아서 직접 (이용 기관을) 차리고 싶은 심정이다.
③일상적으로 의료적인 처치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위해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당장 가족이 처치를 해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면 아이는 죽으란 말인가.
▶인터랙티브 바로가기: 클릭하시면 1,071명 설문조사 결과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주소(interactive.hankookilbo.com/v/disability/)를 복사해서 검색창에 입력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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