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진짜 위기

입력
2022.10.20 22:10
수정
2022.10.20 23: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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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검찰 수사에 대해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맹비난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검찰 수사에 대해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맹비난했다. 공동취재사진

좋은 말에도 신뢰 낮은 불신리스크
사법리스크보다 더 근본적인 위기
반대 직면·설득하는 리더십 보여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기도 전에 사법리스크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됐다. 19일 최측근 체포와 민주당 압수수색 대치 이후 정국은 거칠어질 것이고 이 대표가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리더십을 보이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당대표 두 달을 돌이켜 보면 당의 쇄신, 리더십 역량을 보이지 못한 건 자신의 책임이다. 좋은 말에도 믿음이 실리지 않는 이재명의 신뢰리스크야말로 어쩌면 사법리스크보다 더 근본적인 위기다.

지난달 그의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의미가 있었다. 날 선 비판을 자제했고 “국민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는 시스템”이라는 건설적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훌륭한 기본사회론은 당혹스러웠다. 대선 당시 그는 대표 정책이라 할 기본소득을, 부정적 여론을 감지하고는 스스로 구겨서 휴지통에 넣었다. 국토보유세를 걷어 기본소득으로 나누는 것의 효과와 함의와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토론이나 설득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그래 놓고 다시 기본사회라니,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에 전념할 것이라고 국민은 믿을까?

연일 강조한 안보와 민생 발언도 공허함을 풍기는 이유가 있다. 그는 14일 “정부·여당이 민생보다 안보 포퓰리즘에 집중한다”고 비판했고 16일에는 가계부채 대책을 거론하며 “정부가 민생을 최우선으로 국가역량을 총동원해달라”고 썼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며 안보를 편가르기에 이용한 게 바로 이 대표 아닌가. 독일과 달리 반성 없는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냉정히 살펴야 한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만, 친일 공방은 그런 숙고를 위한 제언이라기보다 지지층 결집의 주문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입장은 뭔지도 모르겠다. 6일 정부가 폐지안을 발표한 후 이 대표의 입장은 7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말했다는 ‘관계자 전언’이 이틀 뒤 보도된 게 전부다. 대선 때 일부 반페미니즘 표를 의식해 오락가락하다 뒤늦게야 성평등을 천명했던 이 대표의 ‘비공개 반대’를 보고 과연 민주당이 성평등 원칙을 견지한다고 신뢰할 수 있을까?

이 대표에 대한 미심쩍은 시선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 국민적 실망은 더없이 컸는데도 야당이 별반 반사이익을 보지 못한 게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대선에 재도전하려는 이 대표는 지지층을 향해선 직진하되 민감한 문제는 피하는 게 성공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은 그렇게 했기에 실패했던 것이다. 그는 기본사회부터 민생 우선까지 좋은 말을 해도 무게가 실리지 않는, 불신의 늪에 빠졌다. 핵심 지지층 앞에선 발언 수위를 높이고 이리저리 수습하다가 신뢰를 잃었다. 이견이 큰 사안에는 모호함을 유지하다가 불신을 키웠다. 장점으로 여겨졌던 정책 역량과 추진력이 빛을 보지 못한 게 당연하다. 80~90%가 찬성하는 이슈 자체가 드문데 무엇으로 추진력을 과시할 것인가.

이 대표는 반대를 직면하고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쉽게 가치를 버리고 말을 뒤집는 것을 실용주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생각을 바꾸는 유연함은 독선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덕이지만,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것은 다르다. 뒤에서 조롱할 객기가 아니라 앞에서 설득할 용기가 있어야 지지기반을 확장할 수 있다. 유권자의 요구는 갈수록 분화하고 다양한 집단의 지지를 얻어야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의 선거 패배 진단이었다. 지금 이 대표에게는 검찰 수사라는 중대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이 위기가 지나면, 이 위기를 지나기 위해서라도, 불신이라는 더 깊은 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