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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외교, 눈여겨볼 지방시대 전략

입력
2022.10.21 04:30
수정
2022.10.21 09: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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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꾸이년시가 개발 중인 안푸팅 국제무역지구의 주거단지 대로 초입에 세워진 우호교류 20주년 기념비. 그 뒤로는 폭 22m, 길이 500m의 '용산로'가 있다. 베트남에서 외국 도시 이름을 딴 도로는 용산거리가 처음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베트남 꾸이년시가 개발 중인 안푸팅 국제무역지구의 주거단지 대로 초입에 세워진 우호교류 20주년 기념비. 그 뒤로는 폭 22m, 길이 500m의 '용산로'가 있다. 베트남에서 외국 도시 이름을 딴 도로는 용산거리가 처음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호주 시드니 중심업무지구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블랙타운시의 왕립공군기념공원에 가면 한글로 쓰인 태평양전쟁 희생자 추모비를 볼 수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블랙타운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대구 수성구가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서울 용산구가 교류하는 베트남 중부 꾸이년에서는 오토바이들이 ‘용산로’를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베트남은 왕이나 장군 같은 역사적 인물 이름을 도로명으로 사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명칭의 도로다. 특히, 베트남전 당시 용산에 주둔하던 맹호부대가 이곳에 상륙, 작전을 펼치면서 민간에 적지 않은 상처를 준 사실을 감안하면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게 바로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국제교류, 지방 외교의 힘이다. 이웃 나라와 악수한번 하려고 해도 주변국 눈치를 봐야 하는 ‘낀 나라’의 대통령이나 외교부 수장은 할 수도 없고, 시도조차 힘든 일을 지자체들은 소리 없이 한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지자체들은 84개국 1,330개 도시와 2,000건 가까운 교류 협력 사업을 진행하면서 국가 외교의 사각지대를 채우는 중이다. 올해 초 시행된 지방자치법의 지자체 사무 범위에 ‘국제교류 및 협력’ 업무가 신설될 수 있었던 것도 작지만 의미 있는, 이런 성과들 덕분일 것이다.

지자체들이 당당하게 해외 도시를 만나고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상황에서 지난주 대전컨벤션센터에서는 세계지방정부(UCLG) 총회가 열렸다. 144개국, 546개 도시에서 온 시장들과 국제협력 담당자 등 1,300여 명을 포함해 국내 유학생, 지자체 관계자 4,700여 명 등 6,200명이 1주일간 교류하면서 우의를 다지고, 상생과 동반성장을 위한 협력 지점을 찾는 자리였다. 몇몇 지자체는 총회를 계기로 우호교류,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UCLG 대전 총회 개막식에서 “지방정부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자 국가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라며 “지방정부가 국제무대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기후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 극복을 위해서는 각국 지방정부의 경험 공유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또 “이번 총회가 세계적 지방시대를 꽃피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역설했다.

대통령의 개막식 연설은 작지 않은 의미를 내포한다. ‘지방시대’ 대선 공약의 외연을 확장한 것으로, 지방정부 단위의 국제교류를 또 하나의 지역 발전 및 국가 성장 전략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 국무부가 최근 LA시 국제관계부시장을 지방 외교 특별대사에 임명하는 등 세계 각국이 국가 외교 하층위에 있는 지방 외교에 공들이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지방정부를 앞세워 어려운 일을 처리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우리 지자체가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다. UCLG 총회 두 달 전까지 행사 취소 이야기가 나왔고, 총회 기간 200개가 넘는 국제회의에 참가한 지자체 관계자는 많지 않았다. 영어 울렁증 때문만은 아니다. 외교부나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자체의 국제협력 역량 강화와 내실 있는 교류 지원을 위한 '세계적인' 대책들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정민승 사회부 차장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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