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희생만 사랑한 남자들, 나르시시즘에 기인한다

'나는 대접받아야 할 사람'...엄마의 희생만 사랑하는 남자들

입력
2022.10.22 04:30
수정
2022.10.23 11:06
12면

<91> 어머니 그 자체가 아닌,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남성들의 사랑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1597~1599년 그린 그리스 신화 속 나르시스의 모습.

지난번 젠더살롱 코너에 실린 이한 작가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남자들이 상대를 공격할 때 어머니의 신분에 대한 욕을 많이 하는 현상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을 보면 신기하다. 어머니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곤 하는 여성들과 달리, 무뚝뚝한 중노년 남성들도 어머니를 떠올리자마자 눈빛이 아련해질 만큼 다들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남성들의 평소 언행을 보면 이한 작가의 표현처럼 '멸시와 숭배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현상이 보인다. 왜 이럴까?

우선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성들이 사실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 나는 놀랍다. 이 말이 심한 것 같다면, 주위 남성들에게 물어보시길. 어머니의 어렸을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 어머니가 학교 다니던 시절 무슨 과목을 잘했는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무엇인지… 등등.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하다가 듣는 '엠창'(어머니가 창녀)이라는 말에 화내는 젊은 남성들이지만 좋아하는 게임 공략법에 대해 가진 정보와 비교해보면 초라할 정도로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중년 남성들의 경우도 그렇다. 어머니가 가수 남진과 나훈아 중에서 누구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 이상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한 어머니라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한 작가는 10월 15일자 젠더살롱에서 학생들에게 인기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에 대해 물으면 "부모님 안부 묻는 게임이요"라는 대답이 곧잘 나온다고 했다. 정말 안부를 묻는 게 아니라 부모를 모욕하는 패드립(패륜+드립)이 난무한다는 뜻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고하며 "나의 어머니는 참 훌륭한 분이셨다"고 증언하는 중노년 남성들에게는 이렇게도 물어보길 권한다. "어떤 점에서 훌륭하셨나요?"라고. 본인도 굶주리면서 가난한 이웃에게 쌀을 나눠 주었다. 그래서 존경한다, 같은 증언이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나를 낳고 키워 주셨고 사랑해 주셨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그냥 나에게 잘해 주었으니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많이 이상하다. 결국 '대단한 나 자신을 잘 돌봐 준 사람이기에 훌륭하다'는, 나르시시즘에 기반을 둔 사고가 보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그렇게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어머니와 본인과의 관계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예를 들겠다. 남자친구나 결혼 앞둔 예비신랑이 "나는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엄마가 아침밥 차려 주는 것을 30년간 받아먹었으니 결혼하면 네가 아침밥을 차려 달라"는 말을 해서 고민이라는 여성의 사연을 인터넷 고민상담 코너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성평등, 가사 노동 분담이라든가 '먹고 싶은 사람이 차려 먹어라', '시리얼이나 빵 먹으면 편하다' 등의 의견이 댓글로 달리곤 한다.

물론 다 일리 있는 의견이다. 그러나 나는 본질적으로는 관계에 대한 프레임을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엄마가 차려 준 밥을 먹었으니 결혼 후에는 아내가 차려 주는 밥을 먹겠다니? 이 사고방식 자체가 이상하고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맞벌이하는 현실이라든가 성평등 시대에 맞지 않다는 정도가 아니다. 어머니와 아내를 포함한 여성 전체를 어떤 집단으로 보고 있는가,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생각해보자. 엄마 밥 먹고 30년 지낸 것은 엄마와 아들 두 사람의 관계다. 아내가 될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다. 만약에 친구1이 내 생일에 선물을 주면 나는 그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답례로 친구1의 생일에 선물을 주어야 한다. 친구2에게 가서 '친구1이 나에게 선물을 주었으니 나는 너에게도 선물 받아야겠어. 나는 늘 선물을 받는 인간이니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게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마찬가지다. 그동안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고 성인이 되었으면, 감사하며 '앞으로는 내가 요리를 배워서 엄마 밥을 해드리겠다'거나 '외식을 시켜드리겠다' 이런 식으로 엄마와의 관계에서 정산하는 게 맞다. 아내와의 관계는 둘이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에게 받은 것을 아내에게도 받아 내야겠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왜 그럴까? 왜 남성은 자신을 항상 밥상을 받는 존재로만 여길까? 그것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밥하는 노예로 보기 때문이다. 남성인 주인의 권리니까, 기존의 한 여성 노예에게서 받은 서비스를 새로 구입한 다른 여성 노예에게서 받아 내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예전 노예 즉 어머니의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고 무슨 과목을 좋아했는지 궁금할 리가 없고, 들었다고 해도 기억할 리가 없다.

남성들의 어머니 예찬 타령을 접하면서 이상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생애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를 이용해 남성인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드는 현상. '어머니 세대 여성들은 고생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했는데 요즘 여성들은 이기적이어서 그렇지 않다', '우리 할머니·어머니는 아기 낳고도 바로 밭매러 갔는데 요즘 여자들은 편하게 산다'는 등의 의견을 중년 여성인 나는 인터넷 댓글을 통해 접하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의 또래 남성들에게 육성으로 듣곤 한다. 들을 때마다 괴이한데, 이 역시 어머니를 포함한 여성 집단 전체를 노예 집단으로 여긴다는 증거이니 조용히 수집하고 있다.

여하튼, 어머니 세대 여성들이 고생하고 희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머니에게 본인이 잘해드려야 하는 것이 옳다. 아내에게 대리 효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기 낳고도 바로 밭매러 가신 할머니·어머니가 생각난다면 월급 받아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드리는 것이 옳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할머니 어머니도 고생했으니 요즘 젊은 여성들도 고생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이런 논리는 '모든 여성들은 남성을 위해 희생하고 일하는 존재이니 차별받고 고생해도 참아야 마땅하다'는 인식, 즉 여성들을 노예집단으로 여기는 망탈리테(mentalités·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말이다. 미개할 뿐만 아니라, 평생 차별받고 고생하신 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하는 말도 아니다.

2011년 10월 31일,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홍익대 앞 호프집에서 대학생 30여 명과 맥주를 마시면서 "이대 계집애들 싫어하지" 등의 말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한국일보 보도

이런 잘못된 망탈리테는 현실 여성들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에 더 큰 문제다. 사랑을 받아 봐야 사랑을 줄 줄 안다는 말이 있는데, 일부 남성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렇게나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그 사랑을 세상에 돌려줄 생각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오히려 "내 어머니는 나를 최고로 여기는데, 같은 여자인 너는 왜 내게 잘해 주지 않느냐? 왜 내 요구에 응하지 않느냐?"며 나르시시즘에 도취하여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남성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대학시절 미팅 때 상대 여학생에게 거부당한 경험에 대해 몇 십 년이 지나서도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꼴 같지 않은 게 대들어 패버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정치인의 예를 보면 이해가 쉽다.

그래서인지 한국 남성 작가들이 쓴 문학 작품들을 보면 어머니의 젖가슴이 많이 등장한다. 더불어 누이의 젖가슴도. 왜 그럴까? 성인 남성 본인이 합법적으로 예찬할 수 있는 젖가슴은 본인 아내의 젖가슴인데, 왜? 그것은 어머니와 누이는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이지만 아내는 자신만 위하지 않고 자녀들을 돌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키는, 본인만을 위해주는 여성은 어머니와 누이이기에 다 늙어서도 그 둘의 젖가슴만 찾고 그리워하는 남성들이 있는 것이다. 이는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서, 매우 미성숙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웹툰 '홍녀'의 한 장면. 작가는 한국 남성 문인들이 어머니와 누이의 젖가슴이란 표현을 자주 쓰는 걸 풍자하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렇게나 실상은 어머니를 진정 사랑하지도 않고 같은 급의 인간으로 여기지도 않으면서 왜 어머니의 신분을 창녀라고 욕하는 말에는 분개하는 것일까? 어머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아니다. 싸울 때의 욕설이란 바로 눈앞의 상대를 가격하기 위해서 하는 법. 그 욕설의 목적은 상대의 멀리 있는 어머니를 욕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창녀의 자식이니 종놈이라고 욕하는 것이다.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양반과 노비 사이 또는 양민과 노비 사이의 소생은 그 어미의 신분을 따르게 한 법)에 의하면, 사람의 신분은 어머니를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 신분 운운하는 욕은 '너는 여기에서 나와 싸울 상대의 자격도 없는, 나와 같은 계급에 속하는 인간이 아니니 썩 꺼지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 욕설에 분개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상관없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로 여기는 유아적인 나르시시즘이 상처받은 데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고 진심으로 어머니의 명예를 중시해서 분노하는 것이라면, 어머니를 평소에 밥하는 노예 집단 여성 중 한 명으로 여기고 있을 리가 없다.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데 본인이 아니라 아내를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니까 여성 혐오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만하고, 남성들이 진심으로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길 바란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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