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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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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스스로를 “지구의 수호자”라 칭했다. 지구를 위협하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소행성의 궤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실험에 처음 성공했다고 최근 발표하면서다. 실험에 참가한 나사 과학자는 “수년 동안 상상해온 것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며 기뻐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그들이야말로 미국이 가진 힘의 원천이다.
□ 나사가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1986년 발사 후 70여 초 만에 폭발했다. 1999년 화성 기후관측 위성은 지구와 통신이 끊겨 우주 미아가 돼버렸다. 어이없게도 추력의 단위를 뉴턴(N)이 아닌 파운드(lb)로 계산하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었다. 귀환하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한 2003년엔 나사의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 2018년 화성 땅을 5m까지 팔 ‘두더지’라며 보낸 착륙선 인사이트는 50㎝도 못 팠다. 인사이트를 위협할 먼지를 화성의 강풍이 날려줄 거라던 나사의 예상은 빗나갔다. 실패들이 쌓여 지금의 나사를 만들었다.
□ 요즘 나사는 우주 의식주 고민이 한창이다. 지구를 지키면서 한편으론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다. 2024년까진 외골격 우주복을 내놓을 참이다. 석회를 생성하는 세균으로 우주복에 외골격이 자라게 만들어 달이나 화성에서 사람이 더 많은 힘을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물 사용량을 재래식 농법의 2%로 줄이거나 곤충으로 단백질을 생산하는 우주농법 개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화성 모사토에 셀룰로오스를 섞어 시멘트를 대체할 건설재료를 만드는 데도 눈독을 들인다. 화성에 옥수수 정도는 가져갈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 나사 같은 기관이 닻을 올리려면 지도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나사는 1959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만들었다. 프랑스는 샤를 드골 대통령(1961),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1992), 중국은 장쩌민 주석(1993),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2012)가 각각 우주기관 설립을 추진했다. 윤석열 정부가 연내 발표할 우주청 신설 계획을 둘러싸고 과학계의 물밑 움직임이 분주하다. 어떤 형태든, 누가 수장이든 우주청의 모델은 실패에 너그러운 나사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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