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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에서 일상이 된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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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2016년에 이미 그 지위를 잃었고 마약 사범이 급증하면서 ‘마약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요.”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수리남’의 모티브가 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한탄했다.
마약청정국은 5,000만 명 기준으로 마약 사범이 1만 명 미만일 때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7월까지 단속된 마약 사범만 1만 명을 훌쩍 넘었다. 마약 범죄는 ‘암수 범죄(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했거나 해결되지 않아 범죄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여서 실제 마약 사범은 30만 명까지 추산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합성 마약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펜타닐(Fentanyl)까지 가세하고 있다. 펜타닐은 1959년 벨기에 화학자 파울 얀센이 개발한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이다. 아편계 진통제 모르핀을 100배 농축한 것이 헤로인이고, 헤로인을 100배 농축한 것이 펜타닐이다. 말기 암 환자에게 주로 이용될 정도로 진통 작용이 뛰어나지만 2㎎ 정도 극미량만 흡입해도 목숨을 잃거나 영구적인 뇌 손상을 당할 정도로 후유증도 크다. 미국의 경우 2020~2021년 7만9,000명이 펜타닐 오ㆍ남용으로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펜타닐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마약 시장 판도를 바꿔 놓고 있다. 펜타닐이 더 심각한 이유는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이 처방전을 남발하는 바람에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펜타닐 처방은 2018년 89만1,434건에서 2020년 148만8,325건으로 3년간 67% 증가했다. 한번에 335알 처방을 받는 일까지 있었으며, 특히 10~20대를 중심으로 처방량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지난해부터 ‘마약류 쇼핑 방지 정보망’을 모든 마약류 의약품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다 보니 실효성은 미미한 실정이다.
이처럼 마약이 일상으로 파고들자 정부도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마약 사범 단속과 함께 중독자 재활 등 종합적인 마약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마약 분석 감정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마약류 지정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500만 원 이상 마약 밀수 사건은 검찰이 맡는 등 정부 내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다. 지난해 검ㆍ경 수사권 조정으로 마약 범죄를 담당하던 대검과 일선 검찰청의 강력부가 통폐합되고, 검사의 마약 범죄 수사가 제한돼 공백이 생긴 탓이다. 우리도 미국 마약단속국(DEA) 같은 조직을 만들어 단속에 속도를 내야 한다. 초범에게는 집행유예 등 온정적 판결을 내리는 관행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재활 치료와 관리를 위해 충분한 예산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약 사범을 치료받도록 하는 치료감호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어서 지난해 마약 사범 1만6,153명 가운데 약물중독재활센터에서 치료받은 사람은 18명에 그쳤다. 둑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만시지탄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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