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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내용도 신선하게 만드는 마법"...미국 시청자 사로잡은 'K예능 포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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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런닝맨’만은 즐겨 봐요. 매번 바뀌는 게임도 재미있고 각 출연자들의 캐릭터도 개성이 넘치고 그들이 주고받는 유머, 가족 같은 관계가 좋아요. 출연자들이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보기 좋고요. 요즘에는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언제 봐도 재미있는 TV쇼입니다.”
지난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케이콘(KCON)에서 만난 20대 여성 앨리슨씨는 “’런닝맨’은 오랫동안 봐 와서인지 출연자들이 내 가족이나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그간 주로 리메이크 형식으로 미국 시청자들과 만나온 것과 달리 ‘런닝맨’은 오리지널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케이콘이 열린 LA컨벤션센터에 부스를 차린 미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코코와의 박근희 대표는 “’런닝맨’은 코코와가 서비스하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케이콘 코코와 부스에서도 현지 팬들이 쉴 새 없이 ‘런닝맨’ 대형 포스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박 대표는 “’런닝맨’은 출연자나 내용에 대한 배경 설명이 없어도 누구든 금세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출연자들이 하는 재미있는 술래잡기 게임에 미국 시청자들도 빠져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코와는 국내 지상파 3사가 세운 미국 현지 법인 웨이브아메리카스(옛 코리아 콘텐트 플랫폼)의 OTT 브랜드로 지상파 드라마와 예능은 물론 국내 OTT 오리지널 프로그램도 서비스한다. 박 대표는 “유료 가입자가 90만 명가량인데 그중 90%가 한국인이 아닌 미국 현지인이고 이 중 아시아계 비중은 10% 미만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코코와에서 인기를 끄는 건 ‘런닝맨’뿐만이 아니다. 박 대표는 “최근엔 ‘나 혼자 산다’도 인기 순위 5위 안에 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K팝과 K드라마, K영화에 이어 K예능이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와 달리 예능 프로그램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오리지널 프로그램 수출보다는 포맷 판권을 구매한 뒤 현지화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를 리메이크한 NBC의 ‘베터 레이트 댄 네버’와 음악 추리 예능 ‘복면가왕’을 리메이크한 폭스TV의 ‘더 마스크드 싱어’, 또 다른 음악 추리 예능 ‘아이 캔 시 유어 보이스’ 등이 있다.
‘더 마스크드 싱어’는 2019년 첫 방송된 뒤 지난 9월부터 방송 중인 시즌 8까지 이어지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이 캔 시 유어 보이스’ 역시 2020년 처음 방송된 뒤 시즌 2까지 방송되며 순항 중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TBS ‘셀레브리티 쇼 오프’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미스터리 듀엣’ 또한 미국에 포맷이 수출돼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음악 추리 예능 'DNA 싱어-판타스틱 패밀리'는 국내 방송도 되기 전에 영국 제작사에 포맷이 판매됐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포맷만 구매하면 얼마든지 현지화가 가능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복면가왕’ 포맷은 50여 개국에 수출됐고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맷 역시 20여 개국에 판매됐다. 애덤 스테인먼 워너 브러더스 인터내셔널 TV 제작 부문 부사장은 지난달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연 국제방송영상콘텐츠마켓(BCWW)에 참석해 “또 다른 ’복면가왕’을 찾고 있다”면서 “한국 예능 포맷은 제작 가치가 매우 높은데 그에 비해 가격은 미국이나 영국 예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방송사들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방송사 입장에서 한국 포맷 판권은 가격 측면 외에도 여러모로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보다 유리하다. 스테인먼 부사장은 “한국 시청자는 전 세계 시청자와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면서 "한국에서 성공한 예능은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코와 등을 통해 ‘런닝맨’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미국 현지화 리메이크 예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은 편이다. 글로벌 OTT 업체가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지난 4년간 국내에서 총 7편(14일 공개작 ‘테이크 원’ 제외)의 한국 제작 예능을 선보였지만 연애 리얼리티 ‘솔로지옥’을 제외한 6편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박근희 대표는 “프로그램에 담긴 내용의 문화적 차이가 크거나 출연자를 잘 알아야 재미있는 프로그램일수록 오리지널 포맷이 현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엔 어렵다”고 말했다. 대중이 선호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이 다른 점도 이유가 된다. 스테인먼 부사장은 “대부분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는, 심지어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개그맨들이 고정 패널로 출연해 웃기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미국 시청자에겐 낯선 요소”라고 설명했다.
한국 예능 포맷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유럽의 콘텐츠 제작업체인 프리맨틀 노르딕스의 헨릭 비스크재르 포맷 구매 부문장은 “독창성 측면에서 보면 유럽이나 한국이나 대부분의 예능 포맷은 80% 정도가 같은데 진정한 마술은 나머지 20%에서 일어난다”면서 “한국은 이 20%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기존의 흔한 포맷에서 조금씩 변형시켜 기적을 일으킨다”고 치켜세웠다. ‘더 마스크드 싱어’를 제작한 미국 스마트독 미디어의 크레이그 플레스티스 대표는 “한국 예능 제작자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포맷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잘한다”면서 “한국 예능은 신선하고 혁신적이다. 한국 제작자들과 협업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을 찾기도 했는데 한국에 엄청난 콘텐츠가 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비스크재르 부문장도 “한국 예능은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시도했기에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사적인 내용으로 예능을 만드는 것도 한국 예능의 특징이다. 예능과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대표적이다. 유명 요리사와 연예인들이 경증 치매 노인들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로선 드물게 해외에 포맷이 수출됐다. 스테인먼 부사장은 “한국처럼 미국도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있는데 나 역시 장모님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셔서 아내와 함께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OTT의 급부상과 함께 여러 OTT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현재 상황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해외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스테인먼 부사장은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고 넷플릭스의 위세가 꺾이면서 여러 OTT 업체가 경쟁하고 있으며 기존 방송사들을 다시 찾는 시청자가 늘고 있다”면서 “한국 예능 제작사들에 이 같은 변화는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이제 단순히 포맷 판매를 넘어 현지 리메이크 제작에 참여하는 등 전략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K예능의 미래에 대해 미국 제작자들은 낙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플레스티스 대표는 “시청자들은 변덕이 심하고 관심사가 자주 바뀌기 마련이지만 한국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혁신적인 TV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매우 많고 더 좋은 프로그램을 원하는 열정적인 시청자들도 많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 같은) 정부 기관이 적극적으로 콘텐츠 해외 판매를 지원한다는 것”이라면서 “미국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미래는 밝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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