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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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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뭐 먹지?'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점심때면 주고받는 말이다. 먹는 것이 안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매번 참신한 생각을 떠올릴 수는 없다. 그럴 때 툭 던져지는 답이 '아무거나'이다. '아무거나'를 먹으러 식당가를 나가면 눈앞에 너무 많은 식당이 펼쳐져 있어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때 나오는 말은 '아무데나'이다. 실제로 '아무데나'라는 식당이 종종 있다. 현대인의 일상이 바쁘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손님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등장한 재치 있는 작명법이다.
우리는 가리킬 대상을 정확히 모를 때 '누구', '무엇'이라는 말을 쓴다. '아무'란 이와 달리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쓰는 말이다. 언뜻 생각하면 중립적인 말일 터인데, 실제로 '아무'는 부정의 감정을 표시할 때 더 많이 쓰인다.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데나, 아무 때나 등에서는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함부로 다룬다는 어감이 읽힌다. 외국인들은 종종 '내일 우리 집에서 파티해요. 아무나 오세요'처럼 말해서 분위기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한다.
언어학자인 폴 그라이스는 대화에도 원리가 있다고 했다. 그 유명한 '대화의 원리' 네 가지 중 하나가 태도의 격률이다. 태도의 격률은 상대방이 헷갈리지 않도록 분명하고 명확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다. '그럭저럭, 그냥저냥, 그저 그렇게'를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과 대화하며 곤란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원래 특별할 것 없고, 일상과 같다는 것은 무탈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되는 그런 상태란 사람마다 아주 많이 다르다. 그럭저럭 잘 지내고, 그냥저냥 공부하고, 요새 그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그저 그런 보통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 주문이 아닐지?
'그럭저럭, 그저 그렇게, 아무거나, 아무나'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소중함도 훼손시킨다. 인터넷에서는 '부모님 모시고 식사하려는데, 아무데나 소개해 주세요'처럼 맥락에 안 맞게 쓴 한국인의 글도 쉽게 보인다. 아무 때에 아무나와 아무데서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 아무개씨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식당 '아무데나'에 가면 꼭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있다. 이 '아무거나' 메뉴가 가장 비싸다는 것은 다 알려진 비밀이다. '아무거나'를 선택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다. 오늘은 아무개가 아닌 '나'를 스스로 증명하는 말을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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