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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조력자살' 조사할 때마다 찬반 널뛰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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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반인에게 조력존엄사라고 알려진 '의사조력자살'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여론조사에 따라 찬반 여론이 들쑥날쑥해 어떤 조사가 정확한 민심인지 헷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존엄사의 개념이 불명확하기에 용어부터 정리하고, 세밀한 민심 수렴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사조력자살은 지난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호스피스완화의료및임종과정에있는환자의연명의료결정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법안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 의원 측은 "국내 최초로 조력존엄사법 대표발의"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이 제도를 원하는 국민 여론이 높은 점을 법안 발의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실제 한국리서치가 7월 1~4일 국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조력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하는 의견은 82%였고, 반대 의견은 18%에 그쳤다. 찬성 이유로 자기결정권 보장(25%),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23%), 가족 고통과 부담(20%), 고통의 경감(13%), 남은 삶의 무의미(13%),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6%) 순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한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7월 27일~8월 5일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부와 국회의 정책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택한 응답은 13.6%에 불과했다. 그보다는 간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 체계 마련(28.6%), 의료비 절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26.7%), 호스피스·완화 의료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25.4%)을 답한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특히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보다 생애 말기 돌봄을 위한 호스피스·완화 의료제도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는 견해에 '찬성' 의견이 과반(58.3%)이었고, 반대는 9.6%에 그쳤다. (나머지 32.1%는 '잘 모르겠다')
두 조사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의사조력자살' 제도 도입 필요성에 국민들이 대체적으로 공감하나,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호스피스·완화 의료서비스, 말기 환자를 둔 가족의 경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지원이 우선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용어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조사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과 시민들이 의사조력자살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82%의 압도적인 찬성 결과가 나온 이유는 질문이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의 입법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였기 때문"이라며 "존엄한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인간의 본성에 언제나 부합하기에, 만일 '당신이나 가족이 말기환자가 되었을 때 통증이 심하면 자살을 고려하겠는가?'라고 물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찬성 답변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유도된 질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사고방식이 점차 개방적으로 변했더라도 찬성 비율이 80%를 넘어설 정도까지인지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또 의사조력자살을 찬성하는 이유 중에서 법안의 가장 중요한 도입 취지인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감경)'을 선택한 비율이 13%로 매우 낮은 점도 문제 삼았다. 그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거나 의료비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조력자살법을 찬성한 비율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가족의 고통과 부담, 의료비 문제 등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압력에 의해 죽음을 결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는 의사조력자살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측이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며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의사조력자살을 연명의료결정법에 포함시켜 다루는 것이 근본적으로 법안의 취지와 맞지 않는 점도 문 회장은 지적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의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는 통상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환자 스스로 선택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발적,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할 수 있고, 약물을 환자에게 직접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건 직접적(적극적) 안락사, 해야 하는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하는 건 간접적(소극적) 안락사로 본다. 다만, 비자발적 안락사는 살인과 다름없어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문 회장은 "의사가 직접 투약하면 일반적인 안락사라고 하고,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본인이 투약하면 의사조력자살이라고 구별해 부르지만 둘 다 자의적-적극적 안락사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말했다.
반면 "2018년부터 국내에서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에서의 연명치료중단은 안락사가 아니다"고 했다. "임종에 임박한 환자의 사전 지시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사(自然死)를 돕는 것이기에, 생명의 연한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연명의료결정법과 생명을 단축시키는 안락사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 의원의 개정안은) 연명의료결정법안을 소극적 안락사로 여기고, 같은 법안에 적극적 안락사인 의사조력자살을 끼워 법제화하려 했다"며 "생명을 바라보는 가치가 전혀 다른 행위를 같은 법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으로 널리 쓰이는 조력존엄사(尊嚴死)에 대해서도 "의료계에서는 존엄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안 의원과 언론이 의사조력자살을 조력존엄사로 표현한 것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도 '존엄사는 사망하는 사람의 존엄성 확보를 목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용어'라고만 정의하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전제된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자기결정을 인정하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이행과는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안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서도 조력존엄사의 정의를 세우자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문 회장은 "2018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합법화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이를 통상 '존엄사법'이라고 칭했는데, 존엄사는 미국 오리건주가 의사조력자살을 1997년 시행할 때의 법안 명칭(The Oregon 'Death with Dignity Act')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며 "국민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용어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공통적으로 명확히 정의된 의사조력자살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며 "사회가 터부시하는 '자살'이라는 표현이 거북하니까 '의사조력자살' 대신 '조력존엄사'라고 말하지만, 이는 의사조력자살을 자칫 미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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