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갈래? 샤넬백 살래?...명품 새벽 '오픈런' 사라질까

입력
2022.10.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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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재개로 소비 심리 분산

버진애틀랜틱항공 홈페이지 캡처

버진애틀랜틱항공 홈페이지 캡처

#직장인 이솔(가명·41)씨는 이달 중 이탈리아로 늦은 여름 휴가를 떠난다. 일단 이탈리아는 한국인에 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입국 제한 조치를 완전히 해제했다. 백신 접종 증명서, 코로나 검사 결과 등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여권은 이탈리아에서 '프리 패스'이기 때문에 입국 심사도 까다롭지 않다. 더불어 국내 입국 전·후 코로나 관련 검사가 폐지됐기 때문에 부담도 줄었다.

#워킹맘 김진희(가명·38)씨는 오는 12월 떠나는 오사카 여행 상품을 예약했다. 지난 3년여간 오사카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는데, 11일부터 일본이 무비자로 개인 자유여행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관련 검사도 김씨는 피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은 백신 3차 접종자는 확인서만 있으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엔저 현상도 김씨의 일본여행을 부추겼다.

해외여행 수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단 이달부터 해외 입국자 대상 '입국 후 PCR 검사'가 폐지되면서 코로나 관련 검사에 대한 부담을 덜었고, 가까운 일본이 11일부터 2년 7개월 만에 무비자 자유여행을 허용하면서 해외여행의 물꼬를 텄다. 이 때문에 연말을 기점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반면 팬데믹 기간 호황을 누린 명품시장은 이런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장 문이 열리기 전에 새벽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는 '오픈런' 현상에 변화가 감지돼서다. 수많은 사람들의 긴 줄로 진풍경을 자아냈던 모습이 점점 수그러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명품 브랜드에 분출된 '보상소비'가 해외여행이 풀리면서 '보상관광'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오사카 패키지 100만 원 상당...도쿄 왕복 항공권 80만 원대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한국인의 일본 무비자 관광이 재개된 11일 김포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국제선카운터에서 여객들이 탑승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한국인의 일본 무비자 관광이 재개된 11일 김포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국제선카운터에서 여객들이 탑승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일본 여행 상품부터 동이 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무비자 여행을 허가하기 직전까지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패키지와 에어텔 상품만 허용했다. 이에 따라 관련 여행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참좋은여행은 지난 11일 오전 오사카-교토-우지-나라 3박 4일 패키지 상품(11월 9일 출발)을 내놨는데 불과 한두 시간 만에 예약자가 꽉 차 '대기예약'으로 변경됐다. 성인 1인 가격은 무려 99만9,000원으로 100만 원 상당이다. 국적기로 이동하는 옵션이긴 하지만 굉장히 비싼 편이다. 그런데 닷새가 지나 16일 이 상품 가격은 104만9,000원으로 올랐다. 여전히 대기예약 상태이지만 예약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다른 여행사 상품도 가격이 상승했다. 인터파크투어의 오사카 3박 4일 에어텔 상품(1인당 54만9,000원)은 지난 주말 사이 5만 원이 올라 59만9,000원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오사카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일본 당국이 여행 제한을 풀면서 오사카 여행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관련 여행 상품은 현재 나오자마자 예약자가 넘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항공료까지 치솟고 있다. 팬데믹으로 중단되거나 쪼그라든 노선으로 인해 항공편이 부족해서다. 이달 일본 도쿄로 가는 대한항공의 왕복 비행기표는 70만~80만 원대이고, 11월의 경우도 70만 원대로 치솟았다. 3년 전 코로나 이전 가격에 비해 두세 배 이상 뛴 것이다. 국제유가와 고환율 등의 영향으로 유류할증료까지 상승한 탓도 있다.

지난 3일부터 '입국 후 PCR검사' 의무화 제도가 전면 폐지된 가운데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탑승객들이 수속을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지난 3일부터 '입국 후 PCR검사' 의무화 제도가 전면 폐지된 가운데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탑승객들이 수속을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그래서 항공업계는 증편을 서두르며 여행객 확보에 나섰다. 증편이 되면 공급이 늘어나 비행기표 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1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12일부터 인천~나리타·오사카 노선을 기존 주 7회에서 14회로 증편했다. 인천~후쿠오카는 지난 14일부터 주 3회 일정으로 운항을 재개하고, 인천~삿포로는 오는 30일부터 운항을 다시 시작한다.

아시아나항공도 오는 30일부터 인천~나리타 노선을 주 10회에서 12회로 늘린다. 인천~오사카는 7회에서 10회로, 인천~후쿠오카는 3회에서 7회, 인천~나고야는 2회에서 3회로 증편하기로 했다. 김포~하네다 노선도 30일부터 주 7회에서 14회로 늘린다.

LCC도 일본 노선을 증편한다. 대한항공 계열사인 진에어는 인천~나리타 노선을 매일 2회 증편하고, 인천 ~후쿠오카도 오는 21일부터 매일 2회로 운항 횟수를 늘릴 예정이다. 인천~오사카 노선은 14일부터 매일 2회로 증편된 뒤 오는 30일부터는 3회로 확대된다. 코로나로 중단됐던 부산~오사카 노선을 30일부터 김해공항에서 운항을 재개하고, 인천~삿포로는 오는 12월부터 인천공항에서 매일 오전 출발하는 일정으로 부활한다.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도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인기 노선을 증편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30일부터 김포~하네다 노선 운항 횟수를 기존 주 28회에서 56회까지 증편한다고 발표했다.

'명품에 보상소비? 이제는 보상관광'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시민들이 명품 브랜드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시민들이 명품 브랜드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주부 임수연(가명·39)씨는 이달 초 '오픈런' 없이 샤넬 매장에 들어갔다. 그는 평일 오전 11시께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을 찾았고, 샤넬 매장으로 직행해 대기를 걸었다. 그렇게 세 시간 남짓 흐른 뒤인 오후 2시께 "부티크 경험을 위해 방문해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임씨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대기자가 많아 당일 매장 입장은 거의 포기했었다고.

임씨의 매장 방문이 가능했던 건 오픈런 대기자들이 줄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른 새벽 시간부터 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면서 임씨에게도 기회가 온 셈이다. 임씨는 "요새 일본 등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명품에 쏠렸던 소비가 분산되는 것 같다. 조만간 오픈런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백화점 명품 매장 측도 최근 오픈런을 위해 대기하는 고객들이 줄었다고 밝혔다. 서울 소재 백화점의 한 명품 시계 매장 직원은 "우리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지정된 오픈런 대기 장소가 따로 있다. 여름까지만 해도 이곳에 수십 명에 이르는 고객들이 대기했는데, 최근에는 그 수가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명품 매장 직원은 "오픈런으로 오시는 분들이 예전에 비해 줄다 보니, 고객들에게 평일 오전 시간대에 오시면 당일 입장 가능하다고 안내해 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해외 명품 브랜드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호황을 누렸다. 특히 지난해 국내에선 역대급 실적으로 환하게 웃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해외 명품 20여 개 사의 총매출은 6조5,000억 원으로 전년(4조6,173억 원) 대비 40%가량 성장했다. 그중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1조4,680억 원의 매출로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샤넬과 디올이 바짝 추격했다. 샤넬코리아는 작년에 1조2,238억 원,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는 지난해 6,139억 원의 매출을 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샤넬 매장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샤넬 매장 모습. 연합뉴스

이들 명품 브랜드의 매출 증가는 '보상소비'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로 해외여행 길이 막히면서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명품 시장에서 한꺼번에 분출됐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는 20·30대 젊은 소비층인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에서도 '플렉스(과시형 소비) 문화' 등 확산으로 이어져 명품 브랜드의 매출 증가를 도왔다.

그러나 이제 명품시장에 불던 보상소비는 여행업계로 옮겨가 '보상관광' 형태로 바뀔 조짐이다. 샤넬 등 명품 브랜드에 쏠렸던 소비 성향이 한풀 꺾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행업계는 일본 여행 수요의 경우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을 가는 대신 국내여행과 명품소비를 했다는 직장인 김모(38)씨는 며칠 전 내년 휴가를 위해 유럽 패키지 상품을 예약했다. 김씨는 "매년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했는데 2019년 프랑스를 다녀온 후로 3년간 해외로 나가지 못했다. 최근 다시 해외여행 바람이 일면서 자칫하면 비싸지거나 매진될 것 같아 미리 예약을 마쳤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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