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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것 10년은 책방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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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사세요. 저는 많이 가야 10번도 못 갈 거예요. 70 가까운 나이가 됐으니. 1년에 한 번 서울 나들이할 때 들를게요.'
문자를 들여다보다 눈이 흐릿해졌다.
그는 태백에서 전화를 했었다. 책방에 오고 싶다고. 교통편을 묻는 그에게 나는 쉽게 말하지 못했다. 용인시외버스터미널까지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오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서울에서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는 차편을 말했다.
그리고 며칠 전 그가 왔다. 책방 한쪽에 앉아 오래 뭔가를 쓰고, 밖으로 나가 책방 마당과 마을 한 바퀴를 돌고 왔다. 한참 후 그만 가야겠다며 그가 나에게 엽서 한 장과 도넛 한 개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오래 앉아서 쓴 엽서라고 했고, 도넛은 내가 먹을지 몰라 터미널에서 한 개만 샀다며 겸연쩍게 말했다.
나는 서울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에 그를 내려줬다. 가을 햇빛이 쏟아지는 정류장에서 그가 손을 흔들었다. 지난봄, 서울에서 오셨던 시인 J 선생을 모셔다드릴 때가 생각났다. 선생도 먼지 풀풀 날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드셨다. 어서 들어가라고, 잘 지내라고.
용인은 사실 시골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사는 이곳은 시골이다. 다행히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가 있어 서울로 오가는 길은 가깝지만(서울로 출퇴근도 가능하다), 이곳에서 죽전이나 수지 등 같은 용인을 나가려면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려야 하고, 다시 나가서 갈아타야 한다. 그러니 같은 용인이라도 서울보다 더 오기가 힘들다.
그런데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끔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있다. 한번은 용인, 그것도 같은 처인구에 사는 학생이 버스를 타고 와서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멀어요, 버스 타고 기다리고, 걷고. 다시 오고 싶은데 올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가끔 서울 동작동에서 여행 삼아 오는 분도 있다. 점심 무렵 책방에 왔다 저녁에 돌아가곤 해서 나는 그가 처음에는 운전을 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책방에서 하는 클래식 음악회나 작가와 시인 초청 행사에는 차를 갖고 왔다. 보통 행사는 저녁에 하는데 끝나고 나면 버스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다녀간 책방 단골도 있다. 그는 오자마자 시원한 물을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왔다며 연신 땀을 훔쳤다.
"이젠 차가 없어. 회사를 그만뒀거든. 그래도 어떻게든 올 거야. 오래오래 해야 돼. 여긴 내게 산소 같은 곳이거든."
그는 로고가 박힌 회사 트럭을 타고 다녔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책을 문자로 주문하고 서너 권씩 구입해 가곤 했다. 마침 그날 저녁, 나는 용인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그를 바래다줬다. 머리 하얀 이가 아이처럼 좋아했다.
작은 책방이 대단한 장소는 물론 아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장소가 된다. 내가 어느 한 시절들을 보낸 음악다방과 카페와 서점 같은 곳들이 내게 살아갈 힘을 줬던 것처럼. 그러나 세월과 함께 나는 그곳을 잊거나, 잃었다. 나도 변했고, 그곳들 중 대개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씩 10번, 그러면 10년이다. 어차피 세월과 함께 모두 사라지겠지만, 까짓것 10년은 책방 하면서 살아야겠다. 그가 이곳을 잊지 않고 왔는데 없어졌다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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