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요즘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차량은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최소 10개월에서 많게는 17개월에 이른다. 무엇보다 자동차 반도체 수급난 때문에 생산이 위축된 탓이 크다. 하지만 쏘렌토 대기 기간이 다른 차종에 비해서도 특히 더 긴 건 차의 인기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겐 가격, 연비, 차량 크기와 공간 구성, 편의사양 등이 동급의 어떤 수입 프리미엄 외제차들에 비해서도 우월하게 느껴질 정도다.
▦ 쏘렌토 신차 대기 기간이 한없이 늘어지자 시장에선 ‘신차급’ 중고차가 신차보다도 비싸게 매매되는 기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중고차 거래 사이트엔 지난 3월 생산돼 1만7,000㎞ 남짓 주행한 하이브리드 1.6 AWD 그래비티 모델 중고차가 5,559만 원에 매물로 나왔다. 같은 등급 신차 가격이 4,634만 원이니까, 6개월 이상 탄 차인데도 925만 원의 웃돈이 붙은 셈이다.
▦ 이 외에 2,000㎞도 운행하지 않은 신차급 쏘렌토가 웃돈이 붙어 중고차 시장에 적잖이 나돌고 있는 경위는 암암리에 널리 알려진 바다. 퇴직 기아차 직원들이 30% 할인된 가격으로 차량을 구입해 중고차 시장으로 돌리는 물량이라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쏘렌토 하이브리드 최고 사양 차종을 30% 할인받으면 3,244만 원에 살 수 있고, 그걸 웃돈 붙여 5,559만 원에 중고차 시장에서 팔면 단숨에 2,315만 원을 벌게 되니, 퇴직자들로서는 쏠쏠한 돈벌이인 셈이다.
▦ 최근 기아차 노조가 퇴직 후 평생 2년여마다 자사 신차를 30% 할인해 구입할 수 있는 혜택을 사측이 줄이려 하자 파업을 결정했다고 한다. 쏘렌토 케이스를 보면 노조가 왜 ‘강경투쟁’에 나서는지 이해될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복지제도는 소비자들로서는 매우 불쾌할 수밖에 없다. 기업 복지이니 해당 노사의 재량이라고 해도, 이런 할인혜택은 그 부담이 결국 소비자가격에 전가될 것이라는 점에서, 마치 소비자가 퇴직 노조원들에게 ‘삥땅’을 뜯기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얘기다. 소비자에게 불쾌감을 주고, 신차 유통질서까지 흐리는 이런 불쾌한 제도를 좀 세련되게 바꿀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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