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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떠나면 홀로 남을 아이는…” 두려운 그 말을 남편에게 꺼냈다

입력
2022.10.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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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발달장애 가족 릴레이 인터뷰①
경남 김해의 선영씨와 아들 구승재군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071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광역지자체별 발달장애 인프라의 실태를 분석해 인터랙티브와 12건의 기사로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설문 응답자들의 개별 인터뷰를 매주 토, 일 게재합니다. 생생하고, 아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푸르메센터 3층 외벽에 그려진 벽화 속에서 발달장애인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지역별 복지관은 대부분 1년 이상을 대기해야 겨우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3년, 5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가족독박 돌봄'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다. 배우한 기자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푸르메센터 3층 외벽에 그려진 벽화 속에서 발달장애인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지역별 복지관은 대부분 1년 이상을 대기해야 겨우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3년, 5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가족독박 돌봄'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다. 배우한 기자

“솔직히 그래요. 제가 만일 아프고, 우리 애기 아빠도 아픈 상황이 되면 혼자 남을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쟤를 누가 돌볼까. 상상만 해도 막 미치겠는 거예요. 아기 아빠에게 항상 하는 말이 우리도··· 우리도···.”

4세 수준의 지적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 김선영(가명·49)씨는 인터뷰를 하던 중 감정이 복받쳐 오른 듯 말을 맺지 못했다. 발달장애인 가정들에서 연일 벌어지는 ‘극단적 선택’ 뉴스를 지켜보던 어느 날, 선영씨는 수차례 속으로만 삼켰던 ‘무섭고 슬픈 말’을 남편에게 꺼냈다고 했다.

“단 하루라도, 단 몇 시간이라도 아들에게 우리(부모) 손이 안 가면 옷에 뭐가 묻고, 얼굴에도 또 묻고 케어(돌봄)가 안 되니까. 1년 365일을 우리가 다 씻기거든요. 근데 우리가 나중에 늙어 몸뚱아리가 이게··· 안 되면, 안 되면 그때는 우리가 (아이를) 데리고 가야 되지 않겠냐. 이런 말까지 제가 남편에게 했어요···.”

겨우 말을 이어 가던 그는 한동안 숨죽여 울었다. “상상이 안 돼요, 상상이. (부모가 죽고 없으면) 저걸 누가, 어느 누가 해주겠냐고··· 처음에는 저희도 그 말 꺼내기가 서로 두렵고 했는데, 이제는 서서히 아··· 그럴 수밖에 없는 건가. 자꾸 생각이 들고, 아이도 자꾸 커 가고 하니까.”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이 오직 가족에게 내맡겨진 비참하고 냉담한 현실. ‘부모 없는 세상’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자립과 인간다운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 미비 속에서 부모들의 마음은 곪아 가고 있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거나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참사가 20여 건 발생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 인터뷰에 응한 많은 발달장애인 부모는 “자녀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사는 게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연이어 벌어지는 비극적 참사에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고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5일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발달장애인 가족 4,33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9.8%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부모단체와 장애계는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선영씨는 말했다. "현실이 이런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느그 자식인데 왜 나라가 책임을 지냐’ 이런 말들을 하니까요.”

병원에서 진단받고도 아무 안내도 없었다

경남 김해에 사는 선영씨 부부의 아들 구승재(17·가명)군은 발달장애 일종인 취약X증후군(fragile X syndrome)을 갖고 있다. “겉보기엔 보통 아이처럼 보이는데, 행동은 네다섯 살 정도고 자폐 성향이 약간 있어요.” 엄마의 설명이다.

‘엄마 아빠’ 소리를 할 법한 돌 무렵이 돼서도 승재군은 말문을 트지 못했다. 지인 소개로 보건소에 찾아가니, ○○대병원 발달 클리닉에서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 검사 결과 염색체 이상 소견이 나왔다. 2007년 당시엔 진단 후 병원에서도 별다른 안내가 없었다고 한다.

“진짜 그때 너무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수술은 할 수 있는지, 약을 먹어야 하는지 여쭤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일단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으면 보내는 게 좋을 거다’ 딱 그 정도만 얘기해 주시고요.” 발달재활 치료나 복지제도 등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선영씨는 무작정 지역 장애인 복지관으로 향했다. 복지관에서 하는 ‘조기교육 치료’는 1~2년을 대기해야 한다고 하기에, 아들을 우선 장애전담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지금 와서 보니 참 안타까운 게 보통 병원에서 진단을 받잖아요. 병원에서부터 아예 (발달장애 관련) 복지 제도나 이용기관을 한 번에 알려줬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현재는 관련 복지 서비스 안내,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등 발달장애인 가정을 지원하는 허브(중추) 역할을 하도록 전국에 18개 ‘발달장애인 지원센터’가 설립돼 있다.

교육의 질은 선생님 따라 '복불복'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승재군은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거쳐, 초중고 시절엔 모두 일반학교 도움반(특수학급)을 다녔다.

장애아 전담인 ‘늘사랑 어린이집’은 이전에 다닌 일반 어린이집들과는 천지 차이였다고 한다. “원장님이 참 잘해주셨어요. 장애 아이라고 그냥 줄 서고 있을 때도 멍하게 두지 말고 항상 피드백을 줘라, 긍정적인 말을 해줘라 말하시고, 부모 교육도 잘 시켜주시고요.” ‘교육자의 마인드(태도)’ 중요성을 선영씨가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후엔 줄곧 아들을 일반학교에 보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사회 통합’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교류’의 중요성을 그는 믿었다. “사실 저만 해도 자라면서 발달장애인을 만난 적이 별로 없었어요. 신체장애인만 장애인인 줄 알았지, 발달장애인에 대한 경험도 이해도 없었던 거죠. 저도 일반학교에 아들을 보내는 게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그래서 보내기로 한 거예요.”

교육의 질은 ‘선생님 운’에 따라 복불복이었다. 아이의 수준에 맞춰 어르고 달래기보다 그저 윽박지르던 교사, 장애 아동들을 꼬집고 밀치며 학대하던 보조 교사도 있었다. 현장학습과 수련회를 가려 해도 ‘아이가 힘들지 않겠냐’ ‘승재가 하긴 어려울 것이다’라며 “배려를 가장한 배제”가 많았다.

“특수 선생님이 매년 바뀌는데, 보면 똑같은 권한이 주어지는 것 같지만 교사 나이, 성향, 학교 분위기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일반반 선생님과도 교류하면서 수업도 번갈아 가며 함께 하고, 재정지원도 받아 장애 아이들과 체험활동도 나가는 선생님이 계신가 하면, 교장·교감 눈치 보시느라 제 역할을 못 하는 분들도 있고요.”

1년 대기 후 다닌 복지관 수업에서...

발달장애인에게는 발달재활 치료가 필수다. 의사소통 능력 향상을 돕는 ‘언어치료’부터 가위질·수저 사용 등을 잘 할 수 있도록 운동 능력을 기르는 ‘소근육 운동’, 과도하게 민감하거나 둔감한 감각을 조절하도록 하는 ‘감각통합 치료’ 등이다.

승재군도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부터 ‘사설 언어 치료실’을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도 일반 아이들 혀 짧은 소리나 발음 교정은 잘해도, 발달장애 아동은 이해 못 했던 것 같아요. 일대일 치료 중에 고함 지르고, 짜증 내고… 저도 그땐 애를 처음 키우고, 발달장애인에 대해 모르니까 보냈었죠.”

복지관 1년 이상 대기 후 자리가 난 조기교육 수업을 다니면서야 엄마는 깨달았다. “이전 언어 치료실에서는 수업 방식을 두고 '애한테 고함도 치고 좀 무섭게 해야지 말을 듣고 다 따라 한다' 이랬어요. 일대일 공간에서 선생님이 갑이고, 애는 어리고 당장 교실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게 통했겠죠.”

"그러다 복지관 조기교육 첫 수업 날 끝나고 제가 ‘선생님 승재가 말 잘 안 들어서 힘드셨죠.’ 이러니까 ‘아뇨? 승재, 수업 잘 했어요~’ 딱 이러시더라고요. 그분은 아주 긍정적으로, ‘이거(과제) 끝나고 나면 승재가 좋아하는 거 하자~’라며 장애 특성에 대한 이해를 갖고 대해주셨던 거예요.”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서 우리 애가 문제아가 되기도, 안 되기도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복지관(수업)은 대기자가 너무 많다 보니 1년 넘게 기다리는 게 기본이고, 또 다음 사람에게도 순번이 돌아가야 하니까 1년이면 1년, 몇 개월이면 몇 개월 정해진 기간을 이용하면 탁 끝나 버린다는 게 아쉽고 속상하죠.”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 1,07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9개 지자체에서 복지관 수업을 듣기 위해 응답자 절반 이상이 1년 넘게 대기했다고 답할 정도로, 복지관 인프라는 열악하다. (☞관련 기사 : 복지관 이용 2년, 3년 대기 또 대기…통곡의 좁은 문 ▶클릭이 되지 않으면 다음 주소로 검색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0310420004152 )

많은 보호자는 ‘장애 정도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태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선영씨도 같은 말을 했다. “승재가 다른 발달장애 애들보다도 조금 더 어린 수준인데, 거기에 맞게 할 수 있는 활동이 참 부족해요. 저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며 생각했지만, 외국에선 서비스와 시설을 개별 장애인 당사자에게 맞춘다면 우리는 당사자를 수업에 끼워 맞춰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승재 엄마 선영씨의 바람 3가지

①부모가 발품 팔아 정보를 구할 게 아니라, 발달장애 진단이 되면 병원이나 주민센터에서 먼저 생애주기별로 발달장애인이 갈 수 있는 기관과 이용 가능한 복지 제도를 안내해주면 좋겠다. 정보가 없어 막막한 보호자가 참 많다.

②성인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과 정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발달장애인이 성인이면 부모는 이미 노인이다. 보호자가 아프거나 다치는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기보호, 긴급돌봄 시설이 마련돼야 한다.

③클래식 공연 등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여가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이도 자꾸 그런 곳에 가봐야지, ‘여기에선 조용히, 앉아서 관람하는 것’이라는 사회적인 에티켓과 경험을 쌓을 수 있지 않겠나.

▶인터랙티브 바로가기: 클릭하시면 1,071명 설문조사 결과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주소(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disability/)를 복사해서 검색창에 입력해 주세요.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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