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10명 중 9명 "나도 아동학대로 신고될까 두려워"

입력
2022.10.13 18:24
수정
2022.10.13 18:3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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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걸 못 봐도, 힘든 숙제 내도 '아동학대'
"학교 여건 반영한 실효성 있는 매뉴얼 필요"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아동학대 사안 처리과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김민석(왼쪽부터) 교권상담국장, 전희영 위원장, 손균자 서울지부 사무처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아동학대 사안 처리과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김민석(왼쪽부터) 교권상담국장, 전희영 위원장, 손균자 서울지부 사무처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교사 10명 중 9명은 자신도 아동학대로 신고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전국 6,243명의 교사가 참여한 '아동학대 사안 처리 과정 실태조사'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13일 밝혔다.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71.1%는 '매우 그렇다', 21.8%는 '그렇다'고 답했다. 신고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교사가 92.9%나 되는 셈이다. 아동학대로 신고(민원) 대상이 되거나 이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들도 61.7%나 됐다.

교사들이 이처럼 아동학대 신고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수업 및 생활지도 전반이 아동학대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례 중에는 △청소시간에 학생은 청소를 하는데, 교사는 청소를 하지 않았다 △유아를 두고 교사가 화장실에 다녀왔다(유치원) △손을 안 든 학생에게 발표를 시켰다 △목소리를 엄하게 했다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교사 입장에서는 아동학대와 수업·지도의 경계가 모호한 내용들이다.

손균자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은 "교사의 교육적 행위 하나하나가 모두 아동학대 검열의 대상이 된 지금, 교사들은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위해 폐쇄회로(CC) TV를 설치하고 싶다는 하소연을 하기에 이르렀다"며 "급식 지도 중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인 죄, 아이에게 힘든 숙제를 낸 죄, 아이가 넘어지는 걸 못 본 죄까지 교사들을 아동학대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죄가 확정되는 비율은 극히 적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교사 중 1.5%만 '유죄 확정을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들었다'고 응답했다.

전교조는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이후의 처리 과정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오기 전이라도 일단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교사는 죄인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허위신고에 대해서도 교사는 입장을 소명할 기회도 없이 학부모의 분리조치 요구로 병가와 연가를 강요당한다. 담임을 박탈당하거나 교장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과를 종용받는 경우도 흔하다. 실태조사에서도 응답 교사의 91.6%는 '소명 기회와 진상조사가 없다'고 답했다.

교장이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구를 묵살했다는 응답도 75.6%였다. 아동학대 민원이 들어오면 관리자인 교장이 적극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기보다 '아동학대 민원을 무시한다'는 제2의 민원을 두려워해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교조는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당국이 실효성 있는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금의 매뉴얼은 가정 중심의 아동학대에 치우쳐 있어 학교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아동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 및 교육권이 상호 존중되는 학교를 위해서는 학교 현장에 맞는 실무 매뉴얼과 교육적 해결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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