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합당한 존중·가치 부여 필요한 '사랑의 노동'

입력
2022.10.14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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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들린 번팅 신간 '사랑의 노동'

'사랑의 노동'의 저자 매들린 번팅은 숫자로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돌봄 문제를 포착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랑의 노동'의 저자 매들린 번팅은 숫자로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돌봄 문제를 포착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돌봄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아이를 키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부모를 돌본다. 간병인,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상담사 등 다양한 직종의 돌봄 일자리가 있다. 무엇보다 돌봄 받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정작 돌봄 노동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코로나19로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부편집장을 지낸 매들린 번팅은 신간 '사랑의 노동'에서 돌봄의 비가시성과 가치 절하의 오랜 역사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5년 동안 다양한 분야의 돌봄 종사자들을 인터뷰하고 통계·문헌을 면밀히 살펴 돌봄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이를 통해 돌봄의 관계 속에 흐르는 상호의존성, 연대와 윤리 등 그간 간과돼 온 인류의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노총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주변에서 돌봄노동자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민영화 저지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주변에서 돌봄노동자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민영화 저지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가 만난 돌봄 종사자들이 말하는 '좋은 돌봄'이란 표준화할 수 없고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이들에 따르면 돌봄은 상황적이고 맥락적이기에 다층적 의미를 지니며, 물리적으로 대상자 곁에 존재해야 하는 '오프라인 활동'이다. 의사는 의학적 지식 못지않게 환자와 소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전문적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통찰력, 창조력,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돌봄은 '적극성 대 소극성', '숙련 대 미숙련'의 이분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 저자는 갓난아이와 심장마비를 겪은 부친을 동시에 돌봐야 했던 자신의 경험도 함께 언급하며 돌봄을 여성의 역할로 여겨온 성 고정관념의 문제도 꼬집는다.

저자의 집필 목적은 돌봄의 가치를 상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돌봄 노동이 방대한 규모임에도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돌봄경제'에 시간과 돈, 가치를 투자하지 않는 현실을 명확히 드러내는 게 책의 목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의료 복지 체계 등 높은 수준의 돌봄을 보장하려는 노력에서 큰 진전을 이뤘고 사람들은 이 같은 시스템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를 지속하려면 사회적 인정과 자금 지원, 합당한 존중과 가치 부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은 국립보건서비스(NHS) 예산이 꾸준히 삭감되고 있고,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이후 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영국의 돌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 주도의 사회서비스 확대를 천명하고 있고,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서문에 적은 것처럼 "돌봄은 성인이나 천사나 영웅의 일이 아니다."

사랑의 노동·매들린 번팅 지음·김승진 옮김·반비 발행·468쪽·2만2,000원

사랑의 노동·매들린 번팅 지음·김승진 옮김·반비 발행·468쪽·2만2,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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