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코로나 함정에 걸린 시진핑

입력
2022.10.12 15: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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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과 인접한 톈진의 주민들이 지난 1월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위해 검사소 앞에 줄을 서 있다. 톈진=EPA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과 인접한 톈진의 주민들이 지난 1월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위해 검사소 앞에 줄을 서 있다. 톈진=EPA 연합뉴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제로코로나 정책의 중대 분기점으로 꼽히는 20차 공산당 당대회(이달 16일 개막)가 임박하면서다.

당대회 이후 제로 코로나 기조가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은 제로 코로나 정책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적 위신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에서 비롯됐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팬데믹 원년인 2020년 9월 일찌감치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고 이를 '중국식 제로 코로나 정책의 승리'로 규정했다. 미국과 중국 갈등의 흐름과 맞물려 서방에 대한 우월감을 고취시키는 도구로 활용했고, 시 주석의 '탁월한 영도력'이 가져온 성과로 포장됐다.

올해 상반기 오미크론 변이를 앞세운 2차 대유행이 시작됐고 중국도 이를 피하진 못했다. 세계 각국은 '위드 코로나' 체제로 전향했지만 시 주석은 되레 인구 3,500만 명의 상하이시를 통째로 봉쇄하며 제로 코로나를 고수했다. 자신의 국가주석 3연임이 확정될 때까지 정책적 실패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신호로 해석됐고, 자연스럽게 '당대회 이후 제로 코로나 완화'라는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3연임을 확정해야 시 주석에게도 2년 넘게 유지해온 노선을 수정할 수 있는 정치적 여력이 생기지 않겠냐는 판단에서다.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한 중국인 친구가 조만간 중국에서도 위드 코로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필자의 기대감에 '자중'을 요구했다. 공산당 내부에선 위드 코로나로 급작스럽게 전향할 경우 인민들이 오히려 동요할 것이란 걱정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불만이 누적됐다고는 하지만 14억 중국인 대부분은 "제로 코로나가 옳다"는 정부 말을 그러려니 수긍해왔다. 당대회가 끝났다고 부리나케 제로 코로나를 무를 경우 "정부가 그동안 우릴 속였구나" 하는 인민들의 배신감이 "좋은 세상이 이제서 왔구나" 하는 기쁨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게 중국 지도부의 걱정이라고 한다. 두고 봐야겠지만 위드 코로나로 전향한다 한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매우 천천히 진행될 것이란 얘기다.

국가 지도자 1인의 정치적 위신을 위해 14억 명의 일상을 제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덧 제로 코로나에 길들여진 14억 명이 지도자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시 주석의 자충수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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