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코딩 교육 이대로 안 돼" 코딩 교육 로봇 만든 이치헌 에이럭스 대표

입력
2022.10.12 04:30
수정
2022.10.12 17:5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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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코딩 로봇 개발
식인 전설 내려오는 정글서 사업 아이디어 얻어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정부가 강조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늘릴 수 있도록 초등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코딩 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언어(랭귀지) 위주의 보편적 코딩 교육이 과연 소프트웨어 강국을 만드는 데 효과가 있을까.

이치헌(47) 에이럭스 대표는 이에 의문을 품고 2015년 신생기업(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가 만든 에이럭스는 아이들이 레고 장난감처럼 로봇을 갖고 놀며 코딩을 배우는 교육용 로봇을 개발했다. 그가 코딩 교육의 해법으로 로봇을 제시한 이유를 들어봤다.

이치헌 에이럭스 대표가 직접 개발한 초등생들을 위한 코딩 교육용 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치헌 에이럭스 대표가 직접 개발한 초등생들을 위한 코딩 교육용 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부모들 착각이 문제

이 대표는 초등생들에게 무턱대고 랭귀지 위주로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초등생들에게 랭귀지 위주로 코딩을 가르치면 안 돼요. 이들이 십여 년 뒤 사회에 나가면 그때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사용하는 랭귀지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는 초등생들에게 상상력과 논리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코딩 교육을 해야 효과적이라고 본다. "초등생은 어른보다 이해력이 떨어져요. 그래서 실물이 없으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요. 아이들은 결과물이 눈에 보여야 해요."

그래서 그는 결과를 보여주는 로봇을 개발했다. "초등생들이 코딩을 배워 로봇을 움직이는 내장형(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요. 로봇의 움직임으로 코딩 결과를 확인하죠."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에 주목한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다. "부모들은 소프트웨어라면 게임이나 구글 네이버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만 생각해요. 부모들의 착각이죠. 전 세계 소프트웨어의 70%는 기계에 들어가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가 차지해요. 따라서 초등생들이 자라서 사회에 진출하면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다룰 가능성이 높죠. 그러니 초등생들이 훗날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을 가르쳐야죠."

아이들이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하며 코딩 배워

이를 위해 이 대표는 무려 70종의 코딩 관련 로봇과 인공지능(AI) 제품들을 개발했다. 이 제품들은 9가지 특허와 실용신안 등 30종의 지적재산권이 걸려 있다. "지금도 심사 중인 특허들이 더 있어요."

이 가운데 약 12만 원에 판매되는 '프로보'라는 로봇 제품은 지게차, 트럭, 강아지 등 11종이다. 프로보는 완제품이 아니라 아이들이 조립한다. 로봇이 움직이도록 두뇌 역할을 하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도 아이들이 개발한다. 아이들은 로봇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유선이나 무선으로 로봇에 전송해서 움직임을 보며 놀이하듯 자연스럽게 코딩을 배운다. 만약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면 로봇이 움직이지 않는다.

로봇은 동일한 품질 유지를 위해 모두 국내에서 만든다. 여기 필요한 로봇 공장도 서울 중계동 본사에 마련했다. "교육용 제품은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고 입에 물 수 있어서 높은 기준의 안전성이 필요해요.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도 일부러 국내에서 만들어 품질을 관리하죠."

로봇은 아이들이 싫증 내지 않도록 분해, 재조립과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다양하게 변신한다. "각 로봇은 구현 기능에 따라 7단계까지 개발할 수 있어서 이를 합치면 약 80종의 로봇을 만들 수 있어요. 단계별로 다른 기능과 움직임을 구현해 아이들의 성취욕을 자극하도록 구성했죠. 아이들은 2시간의 기초 교육을 받으면 지게차처럼 간단하게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 수 있어요. 단계가 위로 올라갈수록 로봇의 움직임이 다양하고 복잡해져요."

아이들은 인터넷이나 학교 등에서 로봇 작동에 필요한 코딩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아이 혼자 코딩을 배울 수 있도록 별도의 비공개 사이트에서 온라인 교육 프로그을 하고 있어요."

온라인 접속이 힘들면 로봇 제품에 포함된 교재를 봐도 된다. "책으로도 로봇을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어요. 다만 온라인 사이트는 단계별로 제대로 개발했는지 확인하는 기능이 있는데 책으로는 이를 할 수 없죠."

에이럭스에서 만든 코딩 교육용 로봇 제품들. 이 제품들은 아이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과 기능을 보여준다. 고영권 기자

에이럭스에서 만든 코딩 교육용 로봇 제품들. 이 제품들은 아이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과 기능을 보여준다. 고영권 기자


K로봇 알리는 국제대회 개최

이 대표는 로봇 코딩 교육의 확대를 위해 매년 '프로로봇 챔피언십'(PRC)이라는 로봇대회를 개최한다. 전 세계에 한국 교육용 로봇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대회다.

이 대회는 아이들이 각자 개발한 로봇을 들고 나와 상금을 놓고 속도와 힘을 겨룬다. 참가자들이 늘면서 지난해 국제대회로 확대됐다. "서울 경기 전북 등 국내 6개 지역과 중국 베이징, 말레이시아 등 해외 3곳을 포함해 세계 9곳에 경기장을 만들어 동시다발적으로 대회를 했죠. 인터넷으로 생중계도 해요."

이 대표의 초등생 두 아들도 2019년 대회에 참가했다. "마침 아이들 학교에서 우리의 프로봇으로 코딩 교육을 해요. 아이들이 어떤 감정으로 참가하는지 궁금해 출전을 권유했죠. 아쉽게도 둘 다 예선 탈락했어요."

올해 대회는 다음 달 6일 서울 장충체육관을 포함해 말레이시아 중국 싱가포르 등 세계 5개국에서 동시에 열린다. "약 3,000명이 참가 예정입니다. 지금 각 지역별로 예선 중이죠. 대회가 인기를 얻으면서 서울시, SK텔레콤, 넷마블, 코웨이 등이 후원을 해요. 해외 학교들도 프로보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코딩 교육을 하는 곳들이 있어요."

드론 사업까지 진출

이 대표는 로봇 외에 프로그램을 개발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말랑말랑 코딩여행'이라는 게임형 코딩기도 개발했다. 코딩 로봇과 다른 것은 술래잡기나 사격 게임 등 쌍방향으로 반응하는 게임이 가능하다. "초등생들을 겨냥해 25종의 게임형 코딩기를 개발했어요. 전국 2,000개 이상의 학교가 우리의 코딩 로봇을 이용해 교육하죠."

학생들에게 인공지능(AI)의 작동 원리를 가르치는 미니 로봇 '비누'도 개발했다. 비누는 작은 직사각형 모양에 바퀴 4개가 달려 있다. "비누는 구글의 티처블 머신이라는 소프트웨어 엔진을 이용해 움직이는 AI 로봇입니다. 구글 서버에 접속해 원격으로 AI를 이용하면서 학생들이 AI의 작동 원리를 배우죠."

최근 국내 드론업체와 함께 교육용 드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0년 이상 된 국내 드론 전문업체 바이로봇과 손잡고 교육용 드론을 만들어요. 드론에도 아이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할 수 있죠. 이를 통해 아이들이 항공원리와 조종법을 배울 수 있어 '코드론'이라고 불러요."

이치헌 에이럭스 대표는 세상을 비추는 빛 같은 회사가 되기 위해 사명을 에이럭스로 지었다. 그의 목표는 내년에 회사를 증시에 상장하는 것이다. 고영권 기자

이치헌 에이럭스 대표는 세상을 비추는 빛 같은 회사가 되기 위해 사명을 에이럭스로 지었다. 그의 목표는 내년에 회사를 증시에 상장하는 것이다. 고영권 기자


식인 전설의 밀림에서 사업 영감을 얻다

이 대표는 창업 전 밀림을 누빈 남다른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이후 병역 특례로 LG CNS에 입사해 프로그래밍을 하며 신사업 팀장을 맡았다.

그때 전사적자원관리 소프트웨어(ERP)를 수출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세계 3위 규모의 인도네시아 석탄회사였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밀림 한복판에 서울시만 한 규모의 탄광이 있어요. 워낙 커서 정부에서도 제대로 통제가 안 돼 밀림으로 사람이 끌려가면 찾지 못하죠. 여기 원주민들은 언어에 내일, 미래 같은 단어가 없어요. 오로지 오늘만 살죠. 전설처럼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노예들의 식인 습관 이야기도 전해져요."

이런 곳에 이 대표는 목숨을 걸고 ERP를 팔러 갔다. 심지어 석탄 회사 직원의 상당수는 컴퓨터를 제대로 다룰 줄 몰랐다. "북극 가서 냉장고 팔고 온 격이죠. 그때 소프트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ERP를 팔며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코딩 사업을 생각했어요. 밀림에서 시장을 발견했죠."

이 대표는 엄청난 공포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석탄회사를 설득해 IBM, 액센추어 등 세계적 정보기술(IT) 업체들을 제치고 ERP 판매에 성공했다. 덕분에 그는 승진 등 출세가 보장됐으나 이를 뿌리치고 퇴사해 직장 동료들과 창업했다. "IT로 교육시장을 바꾸고 싶었어요. 밀림 한복판에서도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정도면 코딩 시장과 덩달아 교육 시장이 커질 것으로 봤죠. 이런 생각을 담아 세상을 비추는 하나의 빛이 되겠다는 뜻의 에이럭스라는 사명을 지었어요."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에이럭스의 실적은 지난해 매출 243억 원, 영업이익 10억 원을 기록했으며 올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매출 400억 원, 영업이익 40억 원을 예상합니다. 실적이 오르면서 직원도 130명까지 늘었어요."

이익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에 투자한다. "장애물을 만나면 알아서 피해가는 자율 주행 스케이트보드를 개발하고 있어요." 여기에 필요한 투자금은 지금까지 한국투자증권 넷마블 등에서 160억 원을 받았다.

또 교육용 코딩 로봇을 학원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1230이라는 학원 프랜차이즈 업체도 최근 인수했다. "전국 90개 학원을 운영하는 곳이죠. 이달 중 학원들을 대상으로 코딩 로봇 사업 설명회를 열고 학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해외 시장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중국에 코딩 로봇을 5억 원 이상 수출했고 20개국 이상에 시제품을 보냈어요. 내년부터 수출을 본격 확대할 방침입니다."

그의 목표는 내년 말까지 회사를 증시에 상장하는 것이다. "교육 사업이 재미있고 저와 잘 맞아요. 앞으로 코딩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교육 사업을 하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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