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가상화폐 호구 된 한국

입력
2022.10.11 18:00
수정
2022.10.11 18:09
26면
구독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게티이미지 뱅크 코리아

게티이미지 뱅크 코리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세계는 강력한 금융제재로 러시아군을 향한 자금줄을 차단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나도록 완벽히 성공하지 못했다. 가상화폐 때문이다. 국제 가상화폐 추적기관과 거래소들은 이제까지 러시아군에 흘러들어간 가상화폐가 최소한 400만 달러로 추정한다고 미국 IT전문 매체 와이어드가 보도했다. 이 자금은 러시아군에 무기와 장비를 공급하고, 악명 높은 ‘바그네르 그룹’ 같은 국제 용병 기업 지갑을 두둑하게 하고 있다.

□ 가상화폐 추적기관들은 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자금 흐름은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이를 막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거래소가 가상화폐 현금화를 막는 지점인데, 범죄 자금 세탁 방지 장치가 없는 러시아 내 거래소를 통해 현금을 인출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러시아 거래소는 인도와 중국의 거래소들과 가상화폐를 교환하며 추적을 따돌렸다. 또 가상화폐를 다른 가상화폐로 맞교환하는 ‘코인 스와프’ 수법으로 추적을 더욱 어렵게 한다.

□ 최근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이 2건의 가상화폐 대형 해킹의 배후라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대체불가능토큰(NFT) 기반 게임회사를 해킹해 약 8,900억 원어치 코인을 탈취했는데,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 사건을 벌인 ‘라자루스’가 북한 정찰총국과 연계돼 있다고 본다. 이들은 6월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미 블록체인 기업을 공격해 8만5,800이더리움(약 1,580억 원)을 탈취했다. 이렇게 훔친 가상화폐는 잘게 쪼개 누가 전송했는지 지워버리는 ‘믹서’ 기술 등을 통해 세탁됐다.

□ 북한이 가상화폐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사이 한국은 가상화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취급을 받고 있다. 외환 해외 송금이 편리한 데다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상화폐 관련 수상한 외화 송금은 은행 비은행권 합쳐 17조 원에 달한다. 외환관리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 와중에 국회는 북한 가상화폐 범죄를 수사 중인 미국 검찰을 방문한 법무부 장관 관련 음모론으로 시끄럽다. 배에 구멍이 뚫렸다면 구멍 메울 방법부터 찾고, 그다음 시비를 가리는 게 순리다.

정영오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