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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심기술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

입력
2022.10.12 00:00
27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9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반도체 산업에 거액의 재원을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9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반도체 산업에 거액의 재원을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8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며 미국의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 즉시 발효되었다. 이후 우리의 시선은 반도체 과학법에 포함된 대중 견제 가드레일 조항과 반도체 산업 지원 527억 달러에 모두 쏠려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반도체 과학법의 또 다른 한 축은 국가 핵심 기술 육성에 지원되는 2,000억 달러다.

이번에 발효된 반도체 과학법은 작년부터 논의되던 법안들 중 시급히 통과가 필요한 '반도체 지원법'과 '끝없는 프론티어 법(Endless Frontier Act)'만을 선택해 디비전 A, B로 합쳐 하나의 법안으로 통과시킨 법이다.

디비전 B '연구와 혁신(Research and Innovation)'이란 이름으로 포함된 '끝없는 프론티어 법안'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과학정책의 기초를 수립한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의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Science: The Endless Frontier)' 보고서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1945년 발간된 버니바 부시의 보고서는 전후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의 탄생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진보가 국가안보, 더 나은 보건,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삶의 질, 문화적 진보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새로운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기조는 이번에 발효된 반도체 과학법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다.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반도체 과학법에 총 여덟 차례 언급된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중 일곱 번이 디비전 B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국가안보 전략을 지원하기 위한 경제안보, 과학, 연구, 혁신에 대한 전략 및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안보상 우선시 되는 이익과 목표를 상술하도록 했다. 또한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안보에 핵심적인 기술 및 혁신 분야의 리더십 유지를 위해, 지역·주·연방 정부 기관·고등교육기관·민간 부문·경제 개발 조직·노동 조직·비영리 조직 간 새롭고 건설적인 협력을 장려하는 기술혁신 허브 프로그램 수행도 제안하고 있다.

미국이 향후 국가 전략기술에 투자 승인한 2,000억 달러라는 규모가 시사하는 바가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각 연구개발(R&D) 주체들의 협력을 강조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년 기준 R&D에 4.8%를 투자한 한국은 세계에서 이미 이스라엘에 이어 GDP 대비 R&D에 두 번째로 많이 투자하는 국가다. 미국은 3.5%, 일본은 3.3%, 중국은 2.4%에 불과하다. 2007년 대비 2021년 우리 정부의 R&D 지원은 2.2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1.4배 증가에 그쳤다.

R&D 투자 규모가 크면 클수록 미래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은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 각 R&D 주체 간 조화와 협력을 통해 흩어진 자원을 경제안보 차원에서 집중하고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기술의 효율적 육성에 나서야 한다. 최근 EU와 일본도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과 '통합이노베이션 전략' 등 첨단기술 육성 계획의 재정비에 나섰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 달성을 위한 임무 중심의 R&D 전략을 수립하고 국내 혁신과 장기적 기술 발전을 위해 힘을 모을 때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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