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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 사는 길

입력
2022.10.10 16:44
26면

가처분 기각, 윤리위 징계로 고립무원
성상납 의혹, 과도한 내부 비판 ‘원죄’
젊은 보수 가치 세우고, 태도 돌아보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심문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심문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4개월간의 ‘반란’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법원의 가처분 기각과 당 윤리위 추가 징계는 그에 대한 처참한 패배 선언이다. 1차전에서 이준석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법원은 2차전에선 살아있는 권력의 손을 들어줬다. ‘사법의 정치화’ 시비는 애초 법원으로선 한계가 뚜렷한 영역이었다. 법원 결정에 힘을 얻은 윤리위의 행보는 홀가분했다. 이준석을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드는 교묘한 추가 징계안도 그래서 가능했다.

예기치 않은 2연패로 이준석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다. 당내 기반이 단단하지 않은 데다 주홍글씨가 새겨진 그에게 손을 내밀 인사는 없을 것이다. 징계가 내후년 총선 직전에 풀리지만 현재로선 공천권은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밖으로 뛰쳐나가기엔 명분도, 세력도, 자금도 여의치 않다. 그의 말대로 “더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준석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거푸 이긴 일등공신 아닌가. 언제는 “100년 만에 나올 만한 당대표”라고 추어올리더니 ‘체리 따봉’ 문자 파동 책임을 거꾸로 자신에게 돌리는 데 대한 억하심정이 없을 수 없다. 당의 기강을 흔들고 권력투쟁에만 관심 있는 ‘윤핵관’들을 비판한 결과가 당원 투표로 선출된 자신의 축출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정이 여기까지 이른 데는 이준석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적지 않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입당 때부터 사사건건 부딪친 ‘원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의 성상납 의혹이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다. 비록 경찰 수사에서 불송치 결정이 났지만 그는 이런 의혹에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솔직하지 않은 답변은 이준석이 내는 쓴소리의 효과를 반감시켰다.

다수를 포용하기보다는 배척하는 협량함, 지고는 못 사는 잘못된 승부욕, 젠더와 세대 등 퇴행적인 갈라치기는 정통보수 당대표로서 권위를 손상시켰다. 한국 헌정사 최초 30대 보수당 대표라는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0선의 그를 당대표로 뽑아준 보수 지지층 상당수도 그의 ‘자해 정치’에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준석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어차피 시간은 그의 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 권력이 가장 강한 때는 취임 직후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여의도 정치판에서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승패가 뻔한 싸움에서 굴복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는 패기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이미지를 얻은 건 어쨌든 그에겐 큰 소득이다. 와중에 실세 ‘윤핵관’들은 치명상을 입고 떨어져 나갔다. 전투에서 졌지만 전쟁에서 지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정작 이준석이 해야 할 일은 지금부터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향하는 젊은 보수로서의 가치와 비전을 세워야 한다. 그가 당대표 이후 보여준 정치는 국민이 기대하는 참신하고 개혁적인 보수가 아니라 퇴행적이고 편협한 정치공학, 선거공학뿐이었다.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기 원한다면 앞으로 보수가 나아가야 할 노선과 방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보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려면 품격과 태도도 돌아봐야 한다. 그에겐 늘 “싸가지 없다”는 평이 뒤따른다. 윤 대통령을 비판하기 전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자신의 언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모름지기 정치 지도자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진중해야 한다. “(이준석은) 정치를 제대로 못 배웠다”는 보수 원로 이재오 고문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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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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