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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ᄒᆞᆫ글' 상용화로 되새기는 기업의 가치

입력
2022.10.09 20:00
21면

편집자주

보는 시각과 시선에 따라서 사물이나 사람은 천태만상으로 달리 보인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있었던 그대로 볼 수도 있고, 통념과 달리 볼 수도 있다. [봄B스쿨 경영산책]은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은 시도다.



언문반절표 자료:국립한글박물관

언문반절표 자료:국립한글박물관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한글뿐 아니라 공휴일의 혜택도 주고 계시다. 세계 언어학자들도 극찬할 만큼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인 훈민정음은 세종의 애민정신을 담고 있음에도 당시 조선의 공식문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사대주의를 신봉하는 많은 신하들이 고유 문자를 만드는 것이 오랑캐의 소행이라며 크게 반대를 하였고, 반포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조선시대 사람들이 한글을 언문(諺文) 또는 암클로 낮잡아 보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대왕의 ’정조어필한글편지첩‘이나 백성들의 가족들 간 한글 편지들이 발견될 만큼 조선시대에도 사용자층이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문맹률이 구한말 90%(추정),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 78%라는 자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훈민정음이 요즘처럼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만큼 크게 대중화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훈민정음의 발명자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지만, 한글이 퍼지도록 하는 데는 ‘반절표’를 만들어 배포한 무명의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 반절표는 한글을 자음과 모음으로 나눈 다음에 자음을 초성으로 놓고 모음을 중성으로 놓아서 가로세로로 배열한 표이다. 요즘에도 유아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글 교육에서 한글의 자모를 먼저 익힌 후 반절표를 사용하여 한글의 제자(製字)원리를 익히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종의 상용화 기술인 것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국문(國文)’이라고 하면서 비로소 한글은 우리나라의 공식문자가 되었다. 이후 모든 공문서 작성은 국한문 혼용을 원칙으로 했지만, 구한말 당시 한글은 사람마다 표기법과 맞춤법이 제각각이어서 실제 운용하기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으뜸이 되는 큰 글’이라는 뜻으로 ‘ᄒᆞᆫ글’이라 부르고, 맞춤법과 문법체계도 정리 통일하여 한글을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하도록 보급하는 일은 주시경 선생과 국어연구학회, 조선어학회, 한글학회 등의 헌신으로 이뤄졌다.

이처럼 최초 발명자(개발자)와 대중화 및 상용화를 한 사람이 서로 다른 경우는 비즈니스계에서도 매우 흔한 일이다. 고가였던 자동차를 대중화한 기업가는 헨리 포드(H. Ford)였고, 슈퍼컴퓨터를 개인용 컴퓨터로 개발한 사람은 애드 로버츠(Henry Edward Roberts)이지만, 널리 보급하는 데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IBM PC를 출시한 IBM사이다. 퀄컴사가 개발한 PCS 무선통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여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한국 기업들과 한국인들이다.

희소하고 고가인 것들을 대중들이 널리 사용하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용화(常用化=commercialization)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비싸면 대중들에게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비싸고 좋은 것들을 ‘가성비’ 높게 만들어 누구나 부담 없는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상용화와 대중화의 첨병이 바로 기업이다.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사)기업가정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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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사)기업가정신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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