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도 고려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확답은 피하면서도 "한미일 3개국이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대응 방안을 준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만 합의사항을 준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4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 "최악의 상황에선 여러 옵션을 모두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7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 관계 장관들의 국감 발언까지 종합하면, 정부는 북한 핵실험을 레드라인으로 삼고 북한 추가 도발 여하에 따라 우리가 먼저 9·19 합의를 깰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 방침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북한은 전날 새벽 단거리 미사일 2발을 쏘면서 12일간 6차례 탄도미사일 도발을 이어갔고 오후엔 12대의 전투기·폭격기 편대가 우리가 설정한 북측 특별감시선 남쪽에서 공대지 사격훈련을 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2017년 9월 이후 5년여 만의 추가 핵실험을 염두에 두고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로 관측된다. 비록 미사일 낙하 지점이나 편대 비행 상공이 9·19 합의로 설정된 군사훈련 중단 구역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남북 간 군사적 긴장 해소 및 신뢰 구축이라는 합의 정신을 정면 위배하는 행위다. 북한이 핵실험마저 감행한다면 합의가 더는 존속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다만 현 상황에서 선제적 합의 파기는 섣부른 선택이 될 수 있다. 남북이 강대강 대결로 치닫는 와중에 우발적 무력 충돌을 막을 최소한의 완충지대마저 사라질 수 있어서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 간 판문점선언의 군사 분야 이행 차원에서 같은 해 국방장관 간 9·19 합의가 성사된 이래 북한의 합의 위반 행위는 공식적으로 두 번에 그쳤다. 전날 북한 전투기 편대가 9·19 합의상 비행금지구역을 넘지 않았던 점도 그 의도를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향후 정세 변화를 대비해 대북 외교·협상 여지를 열어둘 필요성도 감안해야 한다. 9·19 합의 파기 문제에 정부의 신중한 접근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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