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죽기 전 소원이 설거지'라던 중년 여성 환자
대부분 말기 환자 소원은 '평범한 일상' 회복
당연하게 여긴 일상의 소중함 되새기는 계기
"그럼 이제 강아지 키워도 되나요?" 악성림프종으로 6차례 항암치료를 마치고 외래에서 정기 검진 중이던 환자가 결과가 양호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머뭇거리며 꺼낸 말이다. 항암치료로 저하된 면역기능 때문에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어, 친지에게 맡겨 두었던 강아지를 이제는 데려와도 된다는 말에 환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수년 전 호스피스 봉사자가 임종이 임박한 40대 유방암 말기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설거지'라고 답했다고 하는 걸 전해 듣고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설거지'라는 말 안에는 아프기 전에 주방과 식탁에서 가족과 함께했던 그녀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 환자는 우연히 발견된 왼쪽 가슴의 멍울이 조직검사에서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전이가 된 3기 유방암으로 진단되어 수술받았다. 재발 위험이 큰 상태여서 항암치료도 장기간 받고 정기 검진을 받았으나, 2년쯤 지난 시점에 뼈에 전이가 발견되었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추가하였지만 좋아지다 나빠지기를 반복하다가 폐까지 전이가 되었다.
추가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주보호자인 남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태를 환자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남편은 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보다, 두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더 괴로워하고 있는 아내에게 더 이상의 심적 충격을 주고 싶지 않다며 환자에게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남편 본인이 아직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호스피스 봉사자가 환자 상담을 하러 갔을 때, 아무도 직접 알려주지 않았지만, 환자는 이미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집에 가서 두 자녀와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것이었다. 며칠 후 그녀는 호스피스 봉사자들과 가족의 도움으로 휠체어와 구급차로 집에 갔다. 그러나 기력이 없어 집 안을 한 번 둘러보기만 하고 병원으로 돌아온 환자는 1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힘겨운 항암치료 과정을 견뎌내는 환자 대부분은 아프기 전의 일상을 그리워하고 하루빨리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청소년기의 환자들에게 '병이 나으면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학교에 가고 싶다 하고, 심지어 기말고사나 수능시험을 치고 오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직장을 가진 환자가 체력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는 반드시 경제적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항암 투병 중에 교원임용시험 준비를 해서 합격했지만 병이 진행되어 꿈을 접어야 했던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교원 임용 연수교육을 다녀온 뒤 임종을 맞이한 젊은 여성 환자도 있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버킷 리스트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세계일주여행이나 스카이다이빙 등 평소에 하기 힘든 특별한 일에 도전하는 모습들이 주로 묘사되어 있다. 진료하던 환자 중에는 부인과 함께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하기 위해 항암제 치료를 중단한 중년 남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가 임종이 임박했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일상의 상실이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상적인 사회활동들이 제한되면서 그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불치병으로 입원실에 누워 있어야 할 처지에 놓인다면, 나는 무엇을 가장 하고 싶고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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