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중파의 한 동물프로그램을 우연히 보았다. '탑독TOP DOG'이라는 제목으로 특수목적견이 소개되는 내용이었다. 특수목적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알리려는 의도로 제작된 2부작 코너였다. 2억 원을 들여 100일 동안 제작한 역대급 프로젝트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그대로 탑(TOP) 즉,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최강의 특수견들이 핸들러와 함께 등장한다. 한 살 된 공군 군견, 네 살 된 방화탐지견, 아홉 살 된 수색 및 인명구조견으로 탑독(TOP DOG) 팀이 구성된다. 특수견들에게 실제상황에 맞먹는 가상의 재난상황을 해결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최고의 군인을 뽑는 예능 프로그램인 동물판 '강철부대' 같다고 할까. 재난이 발생한 장소는 교도소. 도망친 죄수가 교도소에 불을 지르고 테러를 저지른다. 이런 상황에서 개들은 죄수도 잡고, 수십 명의 사람들을 구한다. 특수견들은 훈련받은 대로 최선을 다했다. 폭발음이 터져도, 눈앞에 불길이 거세도, 스프링클러가 터져 물줄기가 쏟아져도 개들은 침착했다.
보는 동안 슬펐다. 놀라운 능력에 박수 치고 환호하는 대신 불편하고 슬픈 마음이 앞섰다.
특수목적견은 이름 그대로 인간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는 개들이다. 어릴 때부터 받은 고도의 훈련이 그들을 만들었고, 그들의 능력은 고된 훈련의 결과다.
평범한 개의 일상과는 다른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쓰나. 개들 스스로가 원해서 출연한 것도 아니다. 강철부대에 출연자들처럼, 개들 자신이 내가 최고다 하며 내세우고 싶은 욕망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낫겠다. 파트너와의 신뢰, 충성심, 그 외에 무엇이 있을까. 특수견들은 그게 실제이든 가상이든 배운 대로 할 뿐이다. 그들이 얻는 것은 없다. 결국 탑독이라는 이름은 누구를 위한 칭호일까. 불편한 마음은 과연 필자만이었을까.
그들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굳이 거대한 세트장에서 재난 상황을 만들고, 개들이 내던져지는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가상 재난상황을 벌이는 기획이라니. 실제인지 가상인지도 모른 채 상황에 맞서 대처하는 개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있었을까.
재난은 사람뿐 아니라 개들에게도 위협과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개들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을 수도 있다. 뉴욕 9·11 테러 이후 수백 마리의 개들이 생존자와 시신을 찾아냈는데, 그중 상당수가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기획의도대로 특수목적견에게 관심과 지원을 바랐다면, 개들이 가진 능력에 집중하기보다는 실제 그들이 어떻게 일상을 사는지, 처한 환경은 어떤지, 은퇴 후 어떻게 지내는지에 더 집중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이로움을 위해 일하는 동물들의 수고는 능력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다.
탑(TOP)이 아니어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특수견들이 평생 사람을 위해 일하고, 늙고, 죽는다. 8, 9세에 은퇴한 특수견들은 입양가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나이도 많고 평범한 가정에 적응이 어려울 거란 사람들의 선입견도 크다. 또, 입양을 하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방, 군, 관세청 등에서 특수 목적견의 입양공고를 개별적으로 내기 때문이다. 지금 최고의 특수견에 집중하기보다는 청춘을 바쳐 수고한 은퇴 목적견들의 처우를 존중해줄 시스템을 고려하는 게 진정 특수견들을 위하는 게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생존한 미국 군견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나라를 위해 일했던 개들은 버려지거나 사살되었다. 버려진 개들은 식용으로 쓰였을 거다. 2000년이 되어서야 군견의 귀국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는 어떨까. 눈부신 활약에 가려진 그들의 수고를 충분히 헤아려주는가. 특수목적견은 성능 좋은 장비가 아니다. 불길에 뛰어들 때 화상을 입거나 다칠 수 있고, 두려움이나 불안으로 악몽을 꿀 수 있는 감정과 지각이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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